[김수민의 直說] 개혁 강변하며 중소정당 압박, 언론중재법 통해 언론 자유 뒤엎어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8월 23일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한 정당이 다른 정당들과 맺는 관계가 곧 그 정당의 정체성이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기 전 다른 정당과 맺는 관계는 두 갈래였다. 첫째, 자신이 내세운 개혁 과제에 진보 정당 등 중소정당들을 태우는 노선이다. 20대 국회에서 패스트트랙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공수처법), 검경수사권 조정을 태운 것이 대표적 예다. 중소정당들이 요구한 선거법 개정을 수용하며 형성된 연합은 민주당이 위성정당으로 선거제 개혁 효과를 분쇄하면서 깨지기 시작했다.
둘째, 국민의힘과 연합해 중소정당과 반대 여론을 억누르는 노선이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 일부의 명목임금이 삭감됐던 2018년 최저임금 산입 범위 확대가 대표 사례다. 정의당뿐 아니라 민주평화당 소속 의원도 적잖게 반대했다. 데이터산업 진흥을 빌미로 개인정보 침해의 길을 연 데이터3법도 마찬가지다. 2019년 진보 시민단체에 이어 당시 바른미래당 소속 지상욱, 채이배 의원이 제동을 걸었다. 민주당은 ‘개혁’을 강변할 때는 중소정당들을 줄 세우거나 압박하고, ‘민생경제’ 법안을 다룰 때는 거대 보수 정당과 연합한다.
범여권이 국회 의석 60%를 차지한 지금도 진보 정당보다 국민의힘에 의지한다. 진보 진영이 내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원안대로 받을 수 없다는 판단이 서자 국민의힘을 끌어들였다. ‘차별금지법’도 양당이 함께 뭉갠다. 반면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완화는 적극적·자발적이면서도 국민의힘 의견을 경청해 처리했다. 집값 폭등으로 불어난 종부세 부과 대상을 줄이자는 주장은 일리 있지만 민주당의 강약약강(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함)은 노골적이다.
민주당, ‘이명박근혜’ 시절 여당 후예 돼
민주당은 나아가 나머지 모두가 반대하는 길을 개척하고 있다. 언론노조와 좌우 야당이 반대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다. 언론 보도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할 뿐 아니라, 일정 요건에 해당하면 언론사에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추정하게 한 악법이다. 국제기자연맹(IFJ)은 8월 21일 “법안 내용이 허술해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며 오보에 대해서까지 과도한 처벌 규정이 있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민주당은 자기 정체성을 ‘민주’ ‘개혁’ ‘진보’ 등으로 표현해왔다. 민생경제 법안을 처리하면서 고비마다 국민의힘과 협력하는 이들에게 ‘진보’라는 이름표는 적절치 않다. 민주당 집권기 진보 정책은 부동산, 에너지 분야에서 어설프게 실험돼 국민의 환멸만 자아냈다. 노동권 신장 등도 국민의힘 집권 시절보다 손쉽게 막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가석방도 민주당 손에 의해 더 수월하게 진행됐다.
과거 주창한 ‘언론 자유’를 스스로 뒤엎은 민주당은 ‘민주·개혁’ 정당도 아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여당의 후예다. 민주당은 야당일 때나 개혁 정당이다. 집권하고 과반 의석이 되자 민주 정당이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행동한다. 이는 민주당의 ‘제 몫’이 얼마쯤인지를 증명한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04호에 실렸습니다]
김수민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