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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 화물기’가 인천공항에 나타났다

입력 | 2021-08-29 10:56:00

美, 차이나 미션센터 통해 中 시진핑 견제 본격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 통신]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7년 5월 12일 이병호 전 국가정보원(국정원) 원장의 신병을 북한 측에 넘길 것을 요구했다. 북한은 당시 중앙검찰소, 국가보위성 대변인 성명 등을 통해 “미국 중앙정보국(CIA) 조직자들, 남조선 국정원장 이병호, 국정원 팀장 한가놈, 국정원 요원 조기철, 청도나스카상무유한공사 사장 허광해 놈들은 마땅히 공화국 형법에 의해 가장 무거운 형사책임을 져야 할 대상들”이라고 성토하면서 이들을 형사소추시효 적용 없이 북한 형법상 국가전복음모죄, 민족반역죄, 테러죄로 단죄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美 직면 가장 중요한 도전, 시진핑 체제”

북한이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낸 이유는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이 CIA와 함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제거를 골자로 한 레짐 체인지 공작을 기획해서다. 당시 국정원이 ‘김정은 제거 공작’을 준비했는지 사실관계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일부 언론에서 관련 보도가 나왔을 뿐이다. 다만 이 전 원장이 2018년 5월 CIA로부터 ‘조지 테닛 메달’을 받은 점으로 미뤄볼 때 무엇인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는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이 지난해 9월 ‘분노(Rage)’를 출간하며 밝힌 당시 정황과 맞물려 더 큰 의혹을 빚었다. 우드워드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퇴임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에게 “북한이 가장 크고 위험한 위협”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대통령 취임 엿새 만인 2017년 1월 26일 대북정책과 관련한 관계 부처 회의를 백악관에서 열고 9개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CIA 국장은 북한 김 위원장을 제거하는 시나리오를 작성했고, 3월 초 비밀리에 은퇴 요원 앤드루 김을 만나 ‘코리아 미션센터’를 맡아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원 평창군 태생인 앤드루 김은 고등학생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대학 졸업 후 CIA에 들어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활동하며 한국지부장과 태국지부장, 아태국장 등을 역임했다. 수많은 공작에 관여해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린다. 폼페이오가 그에게 코리아 미션센터를 맡긴 것은 2017년 3월 초였다. 이 전 원장의 국정원장 재임 시기와 겹친다. 코리아 미션센터는 국정원과 협력해 김 위원장을 겨냥한 모종의 공작을 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지 않았다면 한미 양국 정보 당국은 북한 측 주장대로 김 위원장을 겨냥한 공작에 나섰을 수도 있었다. 코리아 미션센터의 애초 설립 목적은 북한 체제의 전복 공작이었을 개연성이 크다.

이미 옛날얘기가 돼버린 코리아 미션센터가 다시 회자되는 이유는 8월 중순 블룸버그통신이 CIA 소식통을 인용해 “윌리엄 번스 CIA 국장이 ‘차이나 미션센터’ 설립을 지시했다”고 보도했기 때문이다. 코리아 미션센터가 북한의 체제 전복을 노리고 만들어진 조직이라면 ‘차이나 미션센터’ 역시 비슷한 목적을 가졌을 개연성이 크다.

CIA가 차이나 미션센터를 만든 이유는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직후인 1월 말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대서양위원회)이 발간한 80쪽 분량의 보고서 ‘더 긴 전문: 새로운 미국의 중국 전략에 대해(The Longer Telegram : Toward a new American China strategy)’를 보면 알 수 있다.

애틀랜틱카운슬은 보고서를 통해 “미국이 21세기에 직면한 단 하나의 가장 중요한 도전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하에서 점차 전체주의적으로 변해가는 중국의 부상”이라면서 “시진핑은 중국을 전통적 마르크스-레닌주의로 회귀시키며 마오쩌둥과 비슷한 개인 숭배를 조장하고, 소수 민족의 저항에 대해 인종 학살에 가까운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향후 미국이 중국이나 중국공산당을 공격할 경우 시 주석이 민족주의 감정에 불을 지펴 내부 결속을 도모하고 권력을 공고화할 수 있으므로, 대중(對中) 전략은 시 주석을 집중 겨냥해 중국 최고지도자를 교체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북아 활동 CIA 특수작전기 급증

차이나 미션센터는 여러 측면에서 절묘한 시기에 존재가 드러났다. 시 주석은 종신 집권으로 가기 위한 3연임을 앞두고 있다. 상하이방 등 정적들을 제거하고자 대대적인 내부 숙청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부터 연달아 발생한 대규모 자연재해는 중화권 전반에서 ‘천멸중공(天滅中共)’이라는 표어가 등장할 정도로 민심을 어지럽히고 있다. 중국, 정확히는 중국공산당은 대단히 심각한 혼란을 겪고 있다.

미 언론에 차이나 미션센터 설립 가능성이 언급됐다면 미션센터는 이미 가동 중일 개연성이 크다. CIA가 이례적으로 보도자료까지 내며 코리아 미션센터 설립 사실을 알린 시점은 2017년 5월 10일이지만 실제로 조직 구성을 준비하기 시작한 때는 2016년 말에서 2017년 초 사이다. 첫 센터장이 지휘봉을 잡은 시기도 2017년 3월이다. 차이나 미션센터는 이미 가동 중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7월부터 동북아시아 전역에서 차이나 미션센터 가동과 관련한 징후가 관측되고 있다. 우선 동북아 지역에서 활동하는 CIA 특수작전기 수가 크게 늘었다. 일본 도쿄 인근의 요코타 미국 공군기지, 야마구치현 이와쿠니 미국 해병 항공기지, 오키나와현 가데나 미국 공군기지에서는 6월 이후 4대의 C-146A ‘울프하운드’ 특수작전기가 식별되고 있다. 이들의 기체등록번호는 각각 12-3050, 11-0316, 10-3077, 11-3031이며 원래 배치돼 있어야 할 미국 플로리다주 헐버트 필드 비행장을 벗어나 일본과 한반도, 대만 일대를 활발하게 날아다니고 있다. 7월 15일 대만 북부 쑹산국제공항에 착륙해 주목받았던 미군 특수작전기가 이 기종이다.

지극히 이례적으로 CIA의 각종 공작용 보급물자를 싣고 다니는 수송기도 동북아에 배치됐다. 기체등록번호 N3755P로, 7월 19일 대만 타오위안국제공항에 착륙해 화제가 됐던 L-100-30 수송기다. 대만 당국은 해당 기체가 주대만 미국대표부의 외교행랑을 싣고 왔다고 발표했지만, 미국대표부의 외교행랑은 통상적으로 대표부 청사와 가까운 쑹산국제공항에서 민간 화물기를 이용해 수송해온 전례가 있다. N3755P가 미국이 아닌 필리핀 마닐라에서 이륙해 대만에 왔다는 점도 해당 기체가 CIA의 공작 물품을 싣고 왔다는 의심이 들게 하는 이유다.

해당 기체는 알래스카 앵커리지에 본사를 둔 ‘APA 리징’이라는 업체 소유다. ‘H&T Airways’가 임대 운용하는 것으로 등록됐지만 이 회사는 ‘민항사’임에도 홈페이지 등에 어떠한 기록도 없다.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낸 지역 역시 레바논, 쿠바, 소말리아, 이라크, 콜롬비아 등 ‘민감한 지역’이다. 세계 항적추적 동호인들 사이에서는 ‘CIA 화물기’로 낙인찍힌 기체다. 민항기임에도 차세대 항공기 위치탐지시스템(ADS-B)과 트랜스폰더를 끈 채 동북아 일대를 비행한다. 일본 이와쿠니 미국 해병 항공기지에서 운용 중이라는 사실이 현지 공개출처정보(OSINT) 정보통에 의해 확인되면서 극동지역에 전진 배치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한국-홍콩-대만 일대 CIA 거점 설치

‘하늘의 여왕’으로 불리는 보잉 747-400. 이 항공기는 이명박 정부 당시 대통령전용기로 사용됐다. [동아DB]

공작기 5대가 날아다니는 상황에서 8월 20일 인천국제공항에 CIA 화물기 1대가 추가로 들어왔다. N356KD 기체등록번호를 가진 보잉 747-400 화물기로, 겉보기로는 민간 항공사 화물기와 구분이 어렵다. 해당 기체는 ‘웨스턴 글로벌 에어라인스’(Western Global Airlines·WGA)라는 회사가 소유한 민항기이지만, 주로 공군기지를 오가는 특별한 항공기다. 8월 13일 미국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 소재 맥클레란 공군기지에서 이륙해 미국 서부 해안의 화물 허브인 트래비스 공군기지를 경유한 뒤 하와이 히캄 공군기지를 거쳐 8월 18일 괌 앤더슨 공군기지에 모습을 드러냈다. 앤더슨 기지에서 출발한 해당 기체는 일본 요코타 공군기지에 들어갔다 8월 20일 인천국제공항을 경유해 당일치기로 홍콩을 다녀온 후 인천국제공항으로 복귀했다.

해당 화물기의 소유주 WGA는 과거 ‘남방항공수송(Southern Air Transport)’이라는 이름을 쓰며 ‘CIA의 발’로 활약했다. 1986년 니카라과에 CIA 불법 무기를 배송하던 중 항공기가 추락해 이른바 ‘콘트라 게이트’를 터뜨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사명을 WGA로 바꿨지만 2016년 독일 뮌헨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가던 WGA 소유 항공기에서 67t에 달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현금과 몇 구의 시신이 발견돼 여전히 CIA의 배송기사 역할을 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 같은 항공기들이 CIA 차이나 미션센터 설립 보도가 나온 시점에 동북아 일대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해당 기체들이 발견됐던 일본-?한국-?홍콩-?대만 일대에 이미 CIA 공작 거점이 설치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차이나 미션센터를 통해 ‘중국 최고지도자 교체’라는 어려운 미션을 이룰 수 있을까.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04호에 실렸습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