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나면 뒤집히는 부동산 정책 정부 믿고 따른 사람만 골탕 부동산 25전 25패면 중과실 아닌가 與, ‘언론징벌’보다 시급한 민생 살펴야
천광암 논설실장
더불어민주당이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지울 수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악의적인 명예훼손에 대해 손배 책임 부과는 물론이고 형사처벌까지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형사처벌을 하지 않는 미국 등 영미법 계통 국가에서만 징벌적 손배를 판례로 인정한다. 실제 적용도 아주 제한적이어서, 보도에 현실적 악의가 있었다는 점을 피해자가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은 고의·중과실 ‘추정’이라는 황당한 조항까지 만들어 언론에 징벌적 손배 책임을 물으려 한다.
국내외 언론단체뿐 아니라 대한변호사협회 같은 법률단체까지 나서서 우려를 표명할 정도로,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내용은 비상식적이다. 만약 징벌적 손배가 우리 법체계를 무시하고 아무 데나 마구 적용할 수 있는 것이라면, 더 시급하게 적용해야 할 곳이 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다가 급기야 실수요자 뒤통수 때리기로 전락한 부동산정책이다.
여당은 언론중재법 개정을 강행하는 이유로 가짜 뉴스에 대한 피해 구제가 급하다는 점을 든다. 하지만 수천만 국민의 삶과 직결된 부동산 문제처럼 훨씬 더 시급한 일에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공급 쇼크”라고 호언했던 2·4대책이 줄줄이 제동이 걸리고 있는 가운데 정부·여당이 내놓는 것이라곤 사전청약 확대처럼 ‘무늬만 공급’인 대책뿐이다. 사전청약제는 이 정부의 정책 뼈대 중 하나였던 후분양제와 상반되는 정책이라는 점에서 역설적이기까지 하다.
재건축 거주 의무를 둘러싼 혼란도 양상이 비슷하다. 정부는 지난해 6·17대책에서 재건축 조합원은 2년간 실거주를 해야만 분양권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전세난을 부를 것이 뻔한 근시안적 대책이었다. 실제로 집주인들이 의무 거주 기간을 채우려고 세입자를 내보내는 현상이 급속도로 확산되자 이 정책은 1년 만에 백지화됐다. 결국 정부를 믿고 따른 사람만 ‘바보’가 되고 재산상 손실까지 입었다. 다음과 같은 경우다.
작은 재건축 아파트 1채를 보유한 A 씨는 자신의 집을 전세 주고, 직장 가까운 곳에 빌라를 빌려 살고 있었다. 하지만 6·17대책 때문에 멀쩡한 세입자를 내보내고 자신이 직접 들어가야 했다. 자신도, 세입자도 원치 않는 이사를 해야 했고 이사서비스 인테리어 중개료 비용으로 수천만 원이 깨졌다. 정부가 정책을 백지화했지만 세입자는 이미 이사를 떠난 다음이었다. 이와 유사한 피해 사례가 넘쳐나서 재건축 단지 인근의 인테리어 업체들이 때아닌 호황을 누릴 정도라고 한다.
이처럼 정책 무능과 변덕 때문에 불의의 피해를 입은 실수요자들 사이에서는 “방법만 있다면 정책당국자들에게 징벌적 손배 책임을 묻고 싶은 심정”이라는 원성이 나온다. 사실 일반적인 정책 실패에 대해 손배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 말이 안 되는 발상이긴 하다. 그러나 이중삼중의 규제로 기본권에 해당하는 언론의 자유에 족쇄를 채우겠다는 것과 비교하면 오십보백보일 뿐이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징벌적 손배의 전제가 되는 고의·중과실의 추정 조항의 하나로 ‘반복적인 허위·조작 보도를 한 경우’를 두고 있다. ‘반복’이 관건이라면 25전 25패의 부동산정책은 고의·중과실이 아니고 뭐겠는가.
여당이 ‘언론징벌법’을 밀어붙이는 독주의 배경은 180석에 이르는 압도적 의석이다. 지금의 의석 구조를 만들어준 지난해 4·15총선이 끝났을 때 당시 여당 지도부는 한결같이 “겸손한 자세”와 “국민 통합”을 강조했다. 이것이 진심이었다면 여당은 반민주적인 ‘언론징벌법’ 폭주를 멈추고 이때의 초심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고의·중과실이 아니고는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진 부동산정책을 원상회복시키는 일 하나만으로도,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
천광암 논설실장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