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에서 생명으로]〈10〉무단횡단 이젠 STOP
서울 은평구 서신초등학교 앞 교차로에 설치된 인공지능(AI) 보행자 교통사고 방지 장치. 무단횡단을 막기 위해 보행자 신호가 초록불로 바뀔 때만 차단기가 올라간다. 신호등이 빨간불일 때 보행자가 차도 가까이 접근하면 주의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위험하오니 뒤로 물러서 주세요.”
20일 서울 은평구 서신초등학교 앞 교차로 횡단보도에 있던 한 시민이 차도 쪽으로 한 발짝 다가서자 이 같은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최근 설치된 ‘인공지능(AI) 보행자 교통사고 방지 시스템’이 자동으로 보행자의 접근을 감지한 것이다. 잠시 후 보행자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자 횡단보도를 가로막고 있던 차단기가 위로 올라갔다. 등굣길에 보행자의 안전을 지키는 녹색어머니회의 ‘AI 버전’인 셈이다. 인근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여모 씨(66)는 “학생들이 많이 다니다 보니 차들이 빨리 달리면 위험천만한 광경이 벌어질 때가 있다. 자동차단기 덕분에 이전보다 더 안전해질 것 같다”고 했다.
○ 무단횡단 금지시설 설치 후 사고 23%포인트 줄어
은평구 서신초교 앞 교차로 역시 무단횡단 사고 등 교통사고의 위험이 큰 지역이다. 반경 300m 안에 초중고교가 4곳이나 몰려 있어 등하교 시간이면 많은 학생들이 이곳을 지난다. 4년 전 인근에 봉산터널이 개통된 뒤로 교통량도 부쩍 늘었다. 더구나 서신초교 옆 도로는 급경사다. 차량들이 빠르게 접근하다가 무단횡단 보행자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다면 큰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김대희 은평구 보행자전거팀장은 “교통사고를 우려하는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아 폐쇄회로(CC)TV와 보행자 신호를 바닥에 표시해 주는 장치에 이어 서울시 최초로 어린이보호구역 안에 자동으로 24시간 작동하는 보행자 안전 차단기도 설치했다”고 말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은 2월 전국의 보행자 교통사고 다발구간 37곳에 무단횡단을 막는 시설물을 설치했다. 공단 관계자는 “중앙선이 그어진 곳에 지면에서 약 1m 높이의 울타리를 중앙분리대처럼 설치해 보행자의 무단횡단이 어렵도록 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중랑구 중화역에서 봉화삼거리를 잇는 왕복 4차로 453m 구간에도 시설물이 설치됐다. 이곳은 시설물 설치 전에 진행한 조사에서 보행자 244명 가운데 65명(26.6%)의 무단횡단이 목격됐다. 설치 후 다시 조사를 벌인 결과 전체 보행자 168명 중 무단횡단자는 6명(3.6%)에 그쳤다. 시설물 설치로 무단횡단 비율이 23%포인트나 줄어든 것이다.
○ “보행섬, 횡단보도 늘려 무단횡단 유혹 줄여야”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보행자의 무단횡단을 유발하는 유인을 제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횡단보도 중간에 보행섬을 설치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보행섬은 거동이 불편한 노약자나 장애인, 걸음이 느린 아동 등이 횡단보도 보행 신호에 쫓기지 않고 중간에 안전하게 머물 수 있게 해준다.보행섬은 도심에서 차량의 속도를 줄이는 효과도 유도할 수 있다. 보행섬이 들어서는 폭만큼 차로의 폭이 줄면 차량이 자연스럽게 감속하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도로관리청에 따르면 횡단보도 중간에 보행섬과 같은 보행자 대피공간을 설치할 경우 보행자 사고가 32%가량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상진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횡단보도 설치 간격을 좁히거나 보행신호를 길게 주는 등 보행자에게 충분한 시간을 준다면 무단횡단 사고를 더욱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 팀장 박창규 사회부 기자 k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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