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1시 20분경. 부산 해운대구의 한 은행에 50대 여성 A 씨가 들어섰다. 잠시 두리번 하던 A 씨는 로비매니저(청원경찰) 박주현 씨(45·사진)에게 “공인인증서를 삭제하러 왔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A 씨는 “은행본부라는 곳에서 전화가 왔는데 ‘계좌가 보이스피싱 범죄에 사용돼 계좌와 인증서를 삭제해야 한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11년 동안 로비매니저로 일해 온 박 씨는 순간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A 씨는 30분 전부터 딸과 나눈 메시지를 담은 휴대전화를 박 씨에게 내밀었다. 딸은 휴대전화를 분실해 임시폰으로 문자만 주고 받을 수 있다고 했다. A 씨에게 보낸 딸의 메시지에는 “은행본부에서 걸려온 전화를 나도 받았다”며 “대신 문제를 해결할테니 신분증과 카드 앞뒷면을 찍어 문자로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출동한 경찰은 다른 전화로 A 씨의 딸에게 연락을 했고 “메시지를 보낸 적이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박 씨의 재치로 A 씨는 사기를 면할 수 있었다. 경찰은 A 씨의 새 신분증 발급을 도왔고 스마트 폰을 초기화했다. 일반적으로 보이스피싱 피해가 실제로 발생하지 않으면 경찰이 수사에 나서기가 어려워 피해 예방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만 취한 것이다.
박 씨는 “사기단 꾐에 넘어간 이들 대다수가 폰에 집중하며 안절부절해 하는 특징이 있다”며 “할일을 했을 뿐”이라며 겸손해했다.
박 씨는 12일에도 30대 여성의 로맨스스캠 피해를 막았다. 올 2월에는 1500만 원을 입금하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지원금 5000만 원을 준다는 꾐에 넘어갈 뻔한 50대 남성을 구했다.
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