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임수 경제부 차장
통화당국과 금융당국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이어진 ‘유동성 파티’의 흥을 깨는 악역을 자처하고 나섰다. 한국은행은 지난주 기준금리를 0.7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지난해 5월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내린 이후 15개월 만이다. 통상 미국 일본 유럽 등 주요국이 먼저 금리를 조정하면 뒤따라가곤 했는데 이번엔 이례적으로 앞장섰다.
그만큼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과 위험 수위에 도달한 가계 빚, 가중되는 인플레이션 압력 등을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현 정부가 출범한 2017년 2분기(4∼6월) 1387조 원이던 가계부채는 4년 만에 30% 급증해 1805조 원을 넘어섰다. 이 중 절반 이상이 집값 급등에 따라 늘어난 주택담보대출이다.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KB국민은행 기준)는 2017년 5월 6억708만 원에서 이달 11억7734만 원으로 94% 뛰었다.
금융당국도 금융권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며 가계 빚 잡기에 나섰다. 그 결과 일부 은행이 주택담보·전세대출을 일시 중단하고 시중은행이 일제히 신용대출 한도를 연소득 이내로 제한하는 등 대출 중단 도미노가 확산되고 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가계부채 관리에 가능한 모든 정책역량을 동원하겠다”며 더 강한 규제를 예고했다.
한은과 금융당국은 돈줄 조이기로 합을 맞추고 있는데 재정을 책임진 정부는 여전히 돈 풀기를 고수하며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 것도 문제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금리 인상으로 어려움이 커질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건 재정의 당연한 역할이다. 그렇다고 재정 형편은 무시한 채 나랏빚을 끌어다가 소비 여력이 충분한 이들에게까지 무차별 현금 살포에 나서는 건 무책임하다.
정부는 당장 추석 전에 국민 88%를 대상으로 재난지원금 11조 원을 푼다. 내년엔 604조 원 넘는 초슈퍼 예산도 편성한다. 여기엔 청년층을 위한 월세 및 교통비 지원부터 반값 등록금 확대, 장병들의 사회 복귀 준비금까지 20조 원 규모의 현금 지원성 사업이 담겼다. 정부가 2030세대 표심을 잡기 위해 선심성 현금 살포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돈 풀기 압박은 더 커질 수 있다. 과잉 유동성을 줄여야 할 때 정부의 무차별 돈 풀기가 계속되면 자산 거품과 물가를 잡기 위한 통화·금융당국의 노력은 물거품이 될 수 있다. 표심을 겨냥한 ‘재정 포퓰리즘’에 제동을 걸어야 할 때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