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지 한 세기가 지나도록 배꼽 잡는 웃음과 감동을 선사해주는 영화가 있다. 흑백 무성영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걸작으로 꼽히는데, 음악과 효과음, 그리고 액션 때문에 보고 있으면 ‘무성’이라는 것도 잊게 하는 영화다. 바로 찰리 채플린의 ‘키드’(1921년)다. 채플린이 자주 그랬듯이 각본, 연출, 제작, 편집, 주연, 그리고 음악까지 맡아서 만든 작품이다.
1889년 영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구빈원(救貧院)을 드나들 정도로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 자란 채플린은 나중에 미국에 건너가서 ‘리틀 트램프(Little Tramp·떠돌이)’ 캐릭터를 완성했다. ‘키드’를 비롯해 ‘황금광 시대’(1925년) ‘시티 라이트’(1931년) ‘모던 타임스’(1936년) ‘위대한 독재자’(1940년) 등 수많은 영화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중산모에 콧수염, 다 떨어져 나간 커다란 신발에 팔자걸음, 바지는 크고 재킷은 꽉 끼는 실루엣에 지팡이까지 겸비한 모습은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하나의 아이콘이 됐다.
‘키드’는 자선 병원에서 아이를 낳고 나오는 여자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아이의 아버지인 듯한 화가한테 버림받은 뒤 고민하다가 부잣집 자동차 뒤에 ‘이 고아를 사랑으로 보살펴 주세요’라고 쓴 쪽지와 함께 아기를 두고 간다. 우리나라는 지금도 미혼모에 대한 시선이나 사회적 지원이 훌륭하지 않은 편인데 당시 미국 사회는 더했을 것이다.
마침내 아기에게 딸린 쪽지를 발견한 떠돌이는 없는 형편에도 아기를 사랑으로 보살피게 된다. 5년 후, 둘은 오손도손 가정을 이루고 사는데 아이가 아플 때 집에 진단하러 온 의사가 아이가 떠돌이의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돼 고아원에 신고하면서 다시 비극적이면서도 결국 희극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채플린 영화는 인터넷TV(IPTV)나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쉽게 찾아서 즐길 수 있다. 요즘 마침 CGV 아트하우스에서 채플린 특별전(다음 달 7일까지)도 열리고 있다. 어린 시절 극장에서 본 후 오랜만에 큰 화면에서 볼 수 있었다. 너무나 익숙한 떠돌이 찰리의 모습, 세계에 나온 지 100년이 된 영화 속에서 오래된 친구를 되찾는 느낌이었다.
노혜진 스크린 인터내셔널 아시아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