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영변 원자로 재가동] 위성사진에 北 냉각수 배출 포착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38노스가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공개한 상업용 위성사진에 포착된 영변 핵시설 내 냉각수 배출 정황은 5MW 원자로 재가동을 보여주는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으로 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밝혔다. 7월 초부터 영변 원자로의 재가동 징후가 포착됐다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지난달 27일 연례 보고서를 구체적으로 뒷받침하는 핵심 증거이기 때문이다.
군 소식통은 “한미 정보당국이 재가동의 유력한 정황으로 보고, 후속 동향을 추적 중”이라고 전했다. 북한이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 생산을 위한 원자로를 다시 가동함에 따라 임기 말 남북 대화와 북-미 간 북핵 협상에 속도를 내려던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이 기로에 놓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 원자로 가동 후 폐연료봉 재처리 가능성
통상 발전용 원자로의 노심에는 핵연료(우라늄)를 채운 다량의 핵연료봉이 들어간다. 이후 핵분열(연쇄반응)을 통해 핵연료가 연소되면서 고열이 발생하는데 이를 식히는 데 물이나 가스 등이 냉각재로 사용된다. 뜨거워진 냉각재를 다시 식히는 과정에 사용된 냉각수는 외부(바다, 강)로 배출된다. 이런 과정이 한 치 오차 없이 진행돼야 원자로를 안정적으로 가동할 수 있다.
1986년부터 가동된 영변 원자로는 실험용 ‘흑연감속로’로 이산화탄소를 냉각재로 사용한다. 원자로 노심을 통과한 고온의 이산화탄소를 식히는 데 사용된 냉각수는 인근 구룡강으로 배출되는 구조다. 38노스는 영변 핵시설의 냉각수 배출 정황이 포착된 것은 ‘2018년 봄(spring)’ 이후 처음이란 점에서 원자로 가동의 유력한 징후라고 지적했다.
원자로가 가동됐다면 폐연료봉(사용 후 핵연료)의 재처리 수순도 기정사실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발전용이 아닌 영변 원자로의 가동 목적은 핵물질(무기급 플루토늄) 생산뿐이기 때문이다. 연소가 끝난 폐연료봉을 꺼내어 방사화학실험실(재처리시설)로 옮겨 화학공정을 거치면 순도 90% 이상의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다. 군 연구기관의 전문가는 “원자로 재가동이 맞다면 대미 협상용보다 핵 능력 증강 목적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군 당국 일각에선 영변 원자로에서 일반 핵무기의 5∼10배 폭발력을 갖는 증폭핵분열탄용 ‘트리튬(tritium)’의 추출 가능성을 제기한다. 트리튬은 반감기가 12년에 불과해 주기적 증산이 필요한데 북한에선 영변 원자로가 유일한 생산시설로 지목된다.
○ 靑 “대북 관여 시급 방증”이라 했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한의 청년절 30주년 경축 행사 참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1일 김 위원장의 행사 참석 사실을 보도했다. 이전에 비해 살이 많이 빠진 모습이 눈에 띈다. 노동신문 뉴스1
한미 당국은 북한을 대화로 이끌어내는 것이 우선이라고 보고 ‘조건 없는 대화’를 강조하면서 대북 인도적 지원을 대화의 지렛대로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8개월밖에 남지 않은 만큼 하반기에 대화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이후엔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이 핵무기 생산 프로그램의 첫 단계인 원자로 재가동을 시위하면서 셈법이 복잡해졌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대화를 강조하지만 도발에 보상하지 않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김홍균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정부는 2017년 북한이 도발을 이어가던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을 최소한의 목표로 삼고 있겠지만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재개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보인다”고 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