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레네 칸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우리 정부에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둘러싼 언론 표현의 자유 제한 논란 등과 관련해 공식 답변을 요구하며 보낸 서한 캡처. © 뉴스1
● “정부·정치 지도자에 대한 비판 제한”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이날 홈페이지에 칸 보고관이 지난달 27일 정부에 보낸 공식 서한 전문을 올렸다. 유엔 차원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이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우려를 표한 것은 처음이다. 칸 보고관은 서한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적법성, 필요성, 비례성 측면에서 모두 부적절하다며 조목조목 비판했다.칸 보고관은 ‘가짜 뉴스 규제’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정당한 목적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제규범 상 표현의 자유는 국가안보, 공공질서, 공중 보건 및 도덕을 보호하기 위할 때만 적법한 절차를 거쳐야 제한해야 한다”면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이런 보호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당국에 지나친 재량권을 부여해 (법률의) 자의적인 이행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병석 국회의장(가운데)과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31일 국회의장실에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 의사일정에 합의한 뒤 서명한 합의문을 들어보이고 있다. 2021.8.31/뉴스1 © News1
칸 보고관은 “한국 정부의 의도는 미디어에 대한 공공의 신뢰를 만드는 것이라고 하지만 개정안이 변화 없이 채택되면 (그 의도와) 정반대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을 심각하게 우려한다”고도 했다.
● “언론중재법 아닌 다른 접근법 고려하라”
칸 보고관은 서한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상정 자체에 부정적인 입장을 전달했다. 그는 “정보공개법의 채택이나 강화, 독립적인 팩트 체크 촉진 등 다른 접근법을 고려할 것을 권고한다”고 했다. 또 “법률 초안을 다시 한번 검토해 달라”면서 “국회 표결에 임할 의원들과도 이 같은 의견과 우려를 공유해 달라”며 정부에 개정안에 대한 의견서 제출을 요청했다. 정부는 60일 이내에 유엔에 입장을 보내야 한다.유엔은 최근 각국에서 ‘가짜 뉴스’ 문제 해결을 내세워 언론 자유를 제한하는 움직임이 늘어나자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왔다. 언론중재법이 세계적으로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신속하게 우려 서한을 발송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24일 유엔 측에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문제를 알리는 서한을 보낸 전환기정의워킹그룹 신희석 법률분석관은 “유엔은 한국의 선례가 다른 나라들에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언론중재법 개정 상황을 계속 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