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4월 총선이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난 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후의 총선을 거울삼아야 한다”고 수차례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열린우리당이 총선 과반 승리 후 ‘4대 입법’(국가보안법 폐지, 사립학교법 개정, 신문법 및 과거사법 제정) 드라이브를 걸다가 민심을 잃고 입법에도 실패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한 것. 강민석 전 청와대 대변인은 9일 이런 내용을 담은 책 ‘승부사 문재인―국난 극복을 위한 대통령의 집념과 결단’을 출간한다.
강 전 대변인이 1일 공개한 책 가편집본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2004년 당시를 회상하며 “(개혁이) 현실성은 있는지 봐야 한다”며 “선을 넘으면 또 다른 혼란과 갈등이 벌어질 것이고 국민이 실어준 힘을 엉뚱한 데 낭비하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김상조 전 대통령정책실장과 이호승 당시 경제수석 등에게 “전례 없는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며 “‘경제’가 아니라 ‘정치경제’를 할 때”라고 말했다. 지난해 보수단체의 광화문 집회에 참석했다가 코로나19 확진이 된 한 유튜버가 치료시설에서 주는 음식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한심할 정도다. 세상이 상식 있게 돌아가야지”라며 “몇 명이 깽판을 쳐서 많은 사람의 노력을 물거품이 되게 했다”고 격노하기도 했다.
여권 대선 주자들과 얽힌 이야기도 담겼다. 문 대통령은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해 “이 지사처럼 빨리빨리 액션을 취해야지” “이 지사 식으로 속 시원히 해결 못하냐”고 참모들을 질책하는가 하면 이낙연 전 국무총리에 대해선 “(이 전 총리가) 대선 주자 반열에 오르기 전에는 ‘총리가 안 보인다’고 하더니.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도 말이다”라며 언론 평가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에 대해선 “그동안 방역현장으로 달려가 불철주야 땀 흘리던 모습은 현장 중심 행정의 모범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내각을 떠나는 것이 매우 아쉽다”고 했다.
강 전 대변인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이 ‘(책 집필은) 알아서 판단할 일’이라는 취지의 답변을 줘서 (집필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에서는 불쾌한 기류도 감지됐다. 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지 않은 데다 현재 진행 중인 정책과 연관된 내용이 담겼기 때문이다. 한 참모는 “대통령이 현직에 있는데 굳이 지금 책을 내야 하는 것이냐”고 했다.박효목 기자 tree62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