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스키 사고로 하반신 마비, 하버드대 진학해 블록체인에 몰두 세계 최초 패럴림픽 NFT 발행 “장애인에 대한 편견 깨고 싶어” “메타버스, NFT 같은 신기술에도 장애인의 취향과 시각 반영됐으면” 직접 발행한 NFT ‘휠카드’ 수익금으로 휠체어 기부, 베트남 대학에 장학생 후원도
김건호 도어랩스 대표가 도쿄 패럴림픽 NFT(대체 불가 자산) 실물카드와 기념품 티셔츠를 소개하고 있다. 이 카드는 온라인으로 보관하는 디지털 카드인 패럴림픽 NFT를 실물로 만든 것이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기술은 불가능을 없애려고 개발되는데 정작 상용화되면 장애인은 배제되곤 합니다. 또 다른 벽이 생기는 셈이죠.”
NFT(대체 불가 자산) 스타트업 도어랩스 김건호 대표(28)는 세계 첫 패럴림픽 NFT를 개발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도쿄 패럴림픽에 출전한 14개 종목 선수들 사진을 담은 디지털 카드인 이 NFT는 패럴림픽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장애인을 향한 편견을 없애자는 바람을 담았다. 김 대표도 11년 전 교환학생으로 간 미국에서 스키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 세계 첫 패럴림픽 NFT 출시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난 김 대표 명함에는 휠체어를 탄 캐릭터와 ‘#2514’가 새겨져 있었다. 올 초 도어랩스가 발행한 NFT ‘휠카드(휠체어 카드)’ 캐릭터다. 디자인이 모두 다른 휠카드 1만 개를 매일 30개씩 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에서 팔고 있다. 2514는 카드 고유번호. 100달러(약 11만6000원)짜리 카드가 2만 달러에 재판매 될 만큼 인기다.도어랩스가 올 초 선보인 휠카드 NFT. 하루 30개씩 판매 중인데 최근 2초 만에 ‘완판’ 될 만큼 인기다. 도어랩스 제공
휠카드마다 캐릭터 생김새나 휠체어 모양이 다르다. 농구공이나 테니스라켓을 들고 있는 캐릭터도 눈에 띄었다. 김 대표는 “휠체어를 탄 사람도 개성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환경공학을 전공하던 하버드대에서 블록체인에 빠졌다. 2017년 귀국해서 만든 블록체인 업체는 하버드대가 지원하는 첫 블록체인 스타트업으로 선정됐고 이후 지금의 도어랩스로 성장했다. 지난해에는 음식점 등에서 NFT로 경품을 받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국내 특허를 받았다.
패럴림픽 NFT를 만들기로 결심한 건 올해 초. 김 대표는 대학 시절부터 장애인 조정 선수 생활을 했다. 서울시 팀에서도 뛰었다. 그는 “패럴림픽이 비장애인 올림픽과 같은 장소, 같은 시기에 개최된 건 1988년 서울이 처음”이라며 “한국 스타트업이 세계 최초로 패럴림픽 NFT를 만들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도어랩스가 대한장애인체육회와 공동으로 1일 출시한 패럴림픽 NFT. 도어랩스 제공
패럴림픽 NFT는 금 은 동 일반 등 4가지 형태로 출시됐다. 종류에 따라 실물카드와 티셔츠, 휴대전화 케이스 같은 기념품도 함께 제공한다. 금 카드(15만 원)를 구입하면 해당 선수들과 메타버스 공간에서 만나 소통할 수도 있다. 세계 최대 메타버스 기업인 게더타운이 서비스를 지원한다.
NFT는 대개 가상화폐로 거래되기 때문에 소비자가 쉽게 구매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패럴림픽 NFT는 카카오페이로 결제가 가능하다. 구입은 도어랩스 웹사이트 ‘카드미(kaard.me)’에서 할 수 있다. 카카오 디지털 지갑 ‘클립’을 통해 디지털 카드 형태의 패럴림픽 NFT를 받아 보관할 수 있다. 티셔츠 제작도 의류 스타트업이 제작을 맡아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수익금은 전액 대한장애인체육회에 기부할 예정이다.
김건호 도어랩스 대표는 하버드대에 다니던 2014년 미국 20개 주 주요 관광지를 돌아본 뒤 온라인 무료 여행 가이드북을 제작했다. 김건호 대표 제공
● 휠카드 장학생 후원하고, 휠체어도 기부
김 대표는 장애인도 살기 편한 세상을 꿈꾼다. 그는 2014년 미국 20개 주 주요 관광지를 휠체어로 돌아본 뒤 장애인용 여행 가이드북을 온라인에 공개했다. 장애인 시각으로 세상의 불편한 것을 바꿔보기로 결심한 것도 이때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서울 인천 편도 제작했다. 그 무렵 장애인 이동권 개선 운동을 하는 ‘무의(MUUI)’라는 사회적 기업을 운영했다. 그 공로로 2018년 장애인인권상을 받았다. 무의는 ‘장애를 무의미하게’라는 뜻이다.휠카드와 패럴림픽 NFT에 이은 새로운 프로젝트도 구상 중이다. 김 대표는 “NFT가 일상에서 보상 수단으로 어느 정도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관심이 크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구글 지도를 통해 휠체어 접근성을 알려주면 NFT를 보내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얼마나 자발적으로 참여할지 보려고 일부러 홍보도 하지 않고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만 프로젝트 소식을 올렸다. 그런데 며칠 만에 25개국에서 ‘휠체어 지도’에 필요한 정보가 쏟아졌다. 그는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과도 관련 프로젝트를 논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8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세계 블록체인 포럼에 참석한 김건호 대표(가운데)와 동료들. 김건호 대표 제공
사업가로서 김 대표는 한국 스타트업 환경에 대해 고민이 많다.
“사람들이 빠른 변화에 익숙해 기술업체가 사업을 펼치기에는 좋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자산에 대한 잣대가 불명확한 점은 아쉬워요.”
수익이 많이 나지 않은 스타트업이지만 기부에는 적극적이다. 휠카드 하나 팔릴 때마다 국제 구호개발기구인 미국 월드비전이 세계 각국 장애인에게 휠체어를 기부한다. 이달부터는 베트남 풀브라이트대학에 수익금 일부를 기부해 휠카드 장학생을 후원할 계획이다. 이 대학은 미국과 베트남 정부, 하버드대가 함께 세운 비영리 사립대학이다. 해외 발령을 받은 아버지를 따라 중학교 때부터 베트남에서 공부한 김 대표에게는 현지 장애인을 지원하는 일이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제가 길에서 3시간을 허비했다면 장애인 100명의 300시간이 버려지는 셈이에요. 저희 기술로 장애인이 삶이 조금이나마 나아지길 바랍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