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놓는 정책마다 숭고한 개혁으로 포장 포장한다고 ‘불편한 진실’ 가릴 수 없어
정연욱 논설위원
문재인 정권에서 ‘개혁’은 상투적인 단어가 아닌 듯하다. 정권의 강력한 의지가 실렸다는 분명한 메시지가 담겨서다. 그 대상도 검찰개혁, 부동산개혁, 언론개혁 등 전방위에 걸쳐 있다. 가히 ‘개혁 공화국’이라 할 만하다.
개혁 드라이브엔 어려움을 극복하고 낡은 과거를 청산한다는 정의의 이미지가 덧씌워진다. 그래서 개혁으로 포장되는 순간 ‘개혁 대 반(反)개혁’이라는 선악(善惡) 구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언어의 매직이다. 정치권, 특히 여권 인사들이 걸핏하면 “개혁, 개혁”이라고 외치는 정치적 노림수일 것이다.
개혁은 명분과 함께 그 칼날이 피아(彼我)를 가리지 않아야 한다. 치우치지 않는 공정이다. 더욱이 개혁주체라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 현 정권에서 남에겐 관대하고 자기에겐 가을서리처럼 엄정하라는 ‘대인춘풍(待人春風) 지기추상(持己秋霜)’이란 말이 회자된 이유다. 김영삼 정부 초기 과감한 개혁 드라이브에 탄력이 붙을 수 있었던 것도 당시 여권 인사들에 대한 과감한 물갈이가 정치적 동력이 된 덕분이었다.
거센 비판 여론 때문에 잠시 멈춘 언론개혁도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 문제의 언론중재법이 담고 있는 최대 5배 징벌적 손해배상제나 모호한 고의·중과실 추정 등 독소 조항이 어디를 겨냥하는지는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여당 대표는 언론중재법을 비판하는 국민의힘을 향해 “평생 야당만 할 텐가”라고 말했다. 결국 언론개혁으로 구제하겠다는 피해자가 집권세력에 맞춰졌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 아닌가.
지난해 6월 여당 의원이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명시한 법안을 발의하긴 했지만 소관 문화체육관광위에선 이 법안이 제대로 다뤄지지도 않았다. 올 2월 문체위 소위에서 이 법안이 상정됐을 땐 오히려 여당 의원들이 “가짜뉴스를 확실히 규정하기 힘들다”며 반대했다. 나중에 회삿돈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 기소된 같은 당 이상직 의원 정도가 이 법안을 지지했다고 한다. 당시 자신을 겨냥한 언론의 비판 보도에 민감했던 탓이다.
여당은 이렇게 하자 많은 법안을 왜 이 시점에 밀어붙였을까. 우선 소관 상임위원장이 야당에 넘어가기 전에 법안 처리를 끝내야 한다는 계산을 했을 것이다. 또한 임기 말 대선정국과 대통령 퇴임 이후라는 시기도 의식하지 않았을까. 집권세력과 비판 언론의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젠 웬만한 국민들도 그 정도의 정치 감각은 갖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개혁이란 미사여구로 포장해도 가릴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이다.
개혁의 길은 국민의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 그래야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추진 동력이 생긴다. 그러나 여권은 180석의 완력을 이런 민의로 잘못 읽었다. 여권의 일방통행은 면죄부를 받았다고 착각한 것이다. 그 역풍 때문에 1년 넘게 독식한 야당 몫 상임위원장을 결국 야당에 되돌려준 것 아닌가. 개혁의 대의가 여권의 무능과 아집을 감싸는 포장재로 전락해서야 되겠는가. 개혁이 더 이상 희화화되어선 안 된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