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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정연욱]與, 더 이상 개혁을 희화화 말라

입력 | 2021-09-04 03:00:00

내놓는 정책마다 숭고한 개혁으로 포장
포장한다고 ‘불편한 진실’ 가릴 수 없어



정연욱 논설위원


문재인 정권에서 ‘개혁’은 상투적인 단어가 아닌 듯하다. 정권의 강력한 의지가 실렸다는 분명한 메시지가 담겨서다. 그 대상도 검찰개혁, 부동산개혁, 언론개혁 등 전방위에 걸쳐 있다. 가히 ‘개혁 공화국’이라 할 만하다.

개혁 드라이브엔 어려움을 극복하고 낡은 과거를 청산한다는 정의의 이미지가 덧씌워진다. 그래서 개혁으로 포장되는 순간 ‘개혁 대 반(反)개혁’이라는 선악(善惡) 구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언어의 매직이다. 정치권, 특히 여권 인사들이 걸핏하면 “개혁, 개혁”이라고 외치는 정치적 노림수일 것이다.

개혁은 명분과 함께 그 칼날이 피아(彼我)를 가리지 않아야 한다. 치우치지 않는 공정이다. 더욱이 개혁주체라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 현 정권에서 남에겐 관대하고 자기에겐 가을서리처럼 엄정하라는 ‘대인춘풍(待人春風) 지기추상(持己秋霜)’이란 말이 회자된 이유다. 김영삼 정부 초기 과감한 개혁 드라이브에 탄력이 붙을 수 있었던 것도 당시 여권 인사들에 대한 과감한 물갈이가 정치적 동력이 된 덕분이었다.

그러나 집권 5년차 문재인표 개혁은 길을 잃은 분위기다. 집권 세력 편에 서느냐, 반대편에 서느냐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갈 정도로 편 가르기가 극심했다. 검찰개혁이 ‘내로남불’의 상징으로 전락한 것이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쇠뿔을 바로잡겠다고 나섰다가 소를 잡는 상황이 되어버린 부동산개혁은 정책 무능의 살아있는 교과서다. 청와대와 여당이 임기 말 정책성과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선뜻 마음이 가지 않는 이유다.

거센 비판 여론 때문에 잠시 멈춘 언론개혁도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 문제의 언론중재법이 담고 있는 최대 5배 징벌적 손해배상제나 모호한 고의·중과실 추정 등 독소 조항이 어디를 겨냥하는지는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여당 대표는 언론중재법을 비판하는 국민의힘을 향해 “평생 야당만 할 텐가”라고 말했다. 결국 언론개혁으로 구제하겠다는 피해자가 집권세력에 맞춰졌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 아닌가.

지난해 6월 여당 의원이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명시한 법안을 발의하긴 했지만 소관 문화체육관광위에선 이 법안이 제대로 다뤄지지도 않았다. 올 2월 문체위 소위에서 이 법안이 상정됐을 땐 오히려 여당 의원들이 “가짜뉴스를 확실히 규정하기 힘들다”며 반대했다. 나중에 회삿돈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 기소된 같은 당 이상직 의원 정도가 이 법안을 지지했다고 한다. 당시 자신을 겨냥한 언론의 비판 보도에 민감했던 탓이다.

여당은 이렇게 하자 많은 법안을 왜 이 시점에 밀어붙였을까. 우선 소관 상임위원장이 야당에 넘어가기 전에 법안 처리를 끝내야 한다는 계산을 했을 것이다. 또한 임기 말 대선정국과 대통령 퇴임 이후라는 시기도 의식하지 않았을까. 집권세력과 비판 언론의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젠 웬만한 국민들도 그 정도의 정치 감각은 갖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개혁이란 미사여구로 포장해도 가릴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이다.

개혁의 길은 국민의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 그래야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추진 동력이 생긴다. 그러나 여권은 180석의 완력을 이런 민의로 잘못 읽었다. 여권의 일방통행은 면죄부를 받았다고 착각한 것이다. 그 역풍 때문에 1년 넘게 독식한 야당 몫 상임위원장을 결국 야당에 되돌려준 것 아닌가. 개혁의 대의가 여권의 무능과 아집을 감싸는 포장재로 전락해서야 되겠는가. 개혁이 더 이상 희화화되어선 안 된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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