寓話 같은 21세기 대한민국 국회 다수 의석 완장 차고 ‘입법 완력’ 권력이 善한 목적 이룬다며 수단 안 가리면 그게 바로 독재
박제균 논설주간
시작은 청원게시판이었다. 어느 날 이런 요지의 글이 올라왔다. ‘기분 나쁘게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아 하루에도 몇 번씩 고통을 당하고 있다. 조치를 취해 달라.’ 그런데 다음 날부터 ‘나도 당했다’며 청원에 동의하는 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 수십∼수백 개 수준이던 동의가 인터넷에서 ‘기분 나쁘게 쳐다보기 반대 운동’으로 화제가 되면서 기하급수로 늘기 시작했다.
불과 열흘 만에 청원에 참여한 인원이 35만 명. 가만히 있을 거대 여당이 아니었다. 발 빠른 입법에 들어가 “‘고의 또는 중과실’로 기분 나쁘게 쳐다본 자는 ‘피해액의 5배’까지 배상해야 한다”는 법안을 만들어냈다. 황당한 법이었지만, 여론조사 결과는 찬성이 많았다. 여론조사 문항이 ‘반복적이고 보복적으로 기분 나쁘게 쳐다봐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준 사람들을 처벌하는 데 찬성하느냐’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상 유례없는 ‘기분 나쁘게 쳐다보기 금지법’의 탄생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 고의·중과실로 기분 나쁘게 쳐다본 건지, 그냥 쳐다본 건데 기분 나쁘게 받아들였는지가 잘 구분되지 않았던 것. 그러자 거대 여당은 이런 조항을 삽입했다. ‘고의·중과실로 기분 나쁘게 쳐다본 건지, 그냥 쳐다본 건지는 쳐다본 사람이 입증해야 한다.’
그러자 반대 여론도 쑥 들어갔다. 80%쯤 되는 국민은 기분 나쁘게 쳐다보든, 그냥 쳐다보든 배상 책임을 질 일이 없었다. 여당도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었다. 어느새 차기 대통령 선거가 6개월 앞으로 다가온 때. 그 전 몇 번의 선거에서 ‘빈부(貧富) 갈라치기’로 재미를 본 여당이었다.
이 법이 시행되자 거리의 풍경이 확 바뀌었다. 이상하게 눈을 내리깔고 시선을 회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비 오는 날에도 선글라스를 끼는 사람들이 갑자기 늘었다. 하지만 이 법은 시작에 불과했다. 거대 여당은 후속 법안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2호는 ‘기분 나쁜데 말 걸기 금지법’이었다.
이런 우화(寓話) 같은 일이 21세기 대한민국 국회에서 벌어질 줄은 몰랐다. 법을 만든다는 사람들이 법이 넘어서는 안 될 ‘레드 라인’을 그은 헌법을 마구 뛰어넘는다. 다수 의석의 완장을 차고 겁 없이 ‘입법 완력’을 휘두르는 꼴이 과거 군국(軍國) 일본의 집단주의를 자조한 “빨간 신호등도 모두 함께 건너면 괜찮다”는 말을 생각나게 한다.
피의자 피고인이 자신을 보호하고 비판 언론을 겁박하는 법을 발의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세상. 그 틈에 숟가락 하나 얹으려던 ‘윤미향 보호법’이 철회된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멋대로, 맘대로 법을 찍어내는 입법 만능이 되레 무법(無法) 시대를 불러온 듯하다.
이 로드맵에 따라 문 정권은 소위 ‘적폐청산’의 칼바람을 일으키고, ‘검찰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검찰 장악을 밀어붙였으며, 사법부 헌법재판소 경찰 등 권력기관을 ‘개조’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신설했으며, 무리한 수사로 재벌을 옥죄고, 이른바 ‘세월호 진상 규명’을 5년 정권이 끝날 때까지 끌어오고 있다. 6대 과제 중 남은 건 ‘언론 개혁’이라는 이름의 언론 장악뿐이다.
4년 반 만에 이 많은 걸 해치운 정권이 놀랍다.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절차를 거쳤다면 이 모든 게 가능했을까. 평등 공정 정의 같은 선(善)한 목적을 이룬다며 이 정권이 동원한 불법 탈법 편법 비상식 등은 훗날 문 정권을 청산하는 데 쓰일 치부책에 오롯이 기록되고 있다. 권력이 선한 목적을 이룬다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그게 바로 독재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