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 작가
“친절하라. 당신이 마주친 모든 이들은 저마다 힘겨운 전투를 치르고 있으니.”―작자 미상
슬픔과 분노가 가슴 저 밑바닥부터 마그마처럼 끓어오를 때, 떠올리는 문장이 있다. 플라톤의 문장으로 알려져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너무 화가 나서 타인에게 미소 지을 마음의 여유조차 사라질 때, 이 문장을 되뇌며 스스로를 토닥인다. 내게 상처를 준 바로 그 사람도 오늘, 아니 평생 쉴 새 없이, 힘겨운 전투를 치러왔을 거라고. 나에게 친절하지 않은 사람, 나를 어떻게든 비난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 문장을 내 식으로 바꾸어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절하자. 하늘이 무너져도, 친절하자. 나를 슬프게 한 사람들은 내게 드러낸 적개심보다 천 배는 쓰라린, 남모를 고통을 견뎠겠지.
이 문장과 쌍둥이처럼 닮은 문장을 파리의 서점 ‘셰익스피어앤드컴퍼니’에서 만났다. “낯선 사람을 환대하라. 그는 어쩌면 변장한 천사일지도 모르니.” 2015년 파리 테러 직후, 어딜 가나 총을 차고 있는 경찰들 때문에 주눅이 잔뜩 든 내게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문장이었다.
정여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