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자동차에는 찾는 길뿐 아니라 다양한 정보를 표시하는 헤드업디스플레이(HUD)가 널리 활용되고 있다. 사진 출처 셔터스톡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대학생 때 지하철과 관련된 숙제를 한 적이 있다. 출발역과 도착역을 입력하면 최적의 경로를 계산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수도권 지하철은 노선도가 형형색색을 이룰 만큼 여러 노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환승역도 많고 목적지까지 가는 방법이 다양하다. 그래서 노선도를 수학적으로 해석한 뒤 가장 빠른 경로, 환승을 가장 적게 하는 경로를 계산했다. 지금은 많은 노선이 신설되어 노선도는 더욱 복잡해졌지만, 해석하는 방법만 이해하면 목적지까지 가는 가장 빠른 경로를 금방 구한다.
자동차에도 찾아가는 곳까지의 길을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이 있다. 위성 정보를 이용해 현재 위치를 파악하고, 자동차에 저장된 지도를 이용하여 최단 경로를 계산하는 방식이다.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는 지하철과 달리 출퇴근 시간에 벌어지는 정체가 있다. 약속시간을 지키려면 아주 일찍 출발하거나 막히지 않는 도로를 잘 찾아가야 한다. 그래서 스마트 내비게이션이라는 것이 등장한다. 인공위성과 통신하며 차들의 현재 위치를 확인한다. 어느 길에 자동차가 몰리고, 한가한 곳은 어디인지 파악한다. 운전자에게 조금 멀리 돌아가더라도 목적지까지 더 빨리 도착하는 길을 알려준다.
상당수의 남자들은 내비게이션을 믿지 않는다. 본인의 기억과 감을 믿고, 더욱이 기계에 의존하는 걸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잘못된 길을 택하여 헤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어설픈 고집이 항상 틀린 것은 아니다. 스마트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이 정답이 아닐 때도 있기 때문이다. 두 갈래의 길 중 하나를 선택할 때, 일시적으로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로 모든 차가 몰려서 더욱 심각한 정체가 일어날 수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내비게이션 시스템이 임의로 차량을 양쪽 길에 적절하게 분배해줘야 한다. 이 경우 어떤 차는 도리어 더 느린 길을 가게 되지만, 모두가 한쪽 길에 몰려서 도로가 주차장이 되는 파국은 막을 수 있다. 즉 각자의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데이터를 독점하고 있는 시스템이 중앙에서 모두를 통제하는 셈이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에도 내비게이션이 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늘에도 비행기가 다니는 길이 정해져 있다. 땅 위의 도로처럼 공항 사이에도 비행기를 위한 길인 항공로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다만 눈에 보이도록 길을 만든 게 아니라, 지상에서 발사하는 전파로 비행기가 다닐 길을 표시한다. 혹은 자동차 내비게이션처럼 인공위성에서 비행기가 가야 할 곳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래서 비행기가 많이 다니는 항공로에서는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정체가 일어나기도 한다. 서울과 제주를 오가는 항공로는 세계적으로도 많이 붐비기로 유명한 곳이다. 지상의 도로가 모자라면 확장하거나 새로운 길을 내는 것처럼 항공로도 확장이 가능하다. 항공기의 항법 능력이나 지상에서의 관제 기술을 바탕으로 항공로 사이의 간격을 보다 촘촘하게 만든다.
미래의 내비게이션은 도심의 빌딩 숲에서 발생하는 갑작스러운 돌풍에도 대비하는 기능을 갖출 것으로 보인다. 국내 드론업체가 세종호수공원에서 피자 배달 시범 서비스를 벌이고 있다(왼쪽 사진). 이런 드론이 바람의 영향을 받는 것에 대비하기 위한 관측기구. 뉴시스·메트로웨더
제대로 된 길을 찾아가기 위한 내비게이션에도 나날이 새로운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도심에서의 이동 공간은 땅에서 하늘로 확장되고 있다. 어떤 기술과 제품을 개발하고 투자하느냐에 따라서 미래 모빌리티 시장을 누가 차지할지 정해질 것이다. 연구개발 투자의 로드맵을 잘 기획하고 집행하는데 도움을 줄 내비게이션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과학기술을 이해하는 정책과 경영을 더욱 고민할 때이다.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