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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꼭 해야 하나요 대출 같이 갚으며 ‘할머니 친구’ 될래요”

입력 | 2021-09-06 03:00:00

[MZ세대가 사는 법]에세이 ‘여성 2인 가구 생활’ 펴낸 두 직장인
옛 직장 동료이자 비혼주의 공통점
비용 절약하려 함께 집 구해 동거 시작
“뜻 맞는 사람과 일상 공유-미래 계획, 둘이서 행복한데 다르면 좀 어때요”



비혼 여성 직장인 두 명이 함께 사는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여성 2인 가구 생활’을 쓴 심모 씨(왼쪽)와 강모 씨. 본인 제공


여자 둘이 함께 산다. 두 사람은 자매도, 친척도, 동창도 아니다. 옛 직장 동료일 뿐이지만 ‘동거인’으로서 살림을 꾸렸다. 이들은 퇴근 후 매일 밤 함께 술잔을 기울인다. 하루 동안 겪었던 고충을 서로에게 토로한다. 행복하다. 어쩌면 결혼 따윈 하지 않고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 아닐까. 둘만 행복하다면 세상의 관점과 조금 다르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지난달 25일 에세이 ‘여성 2인 가구 생활’(텍스트칼로리)을 펴낸 직장인 심모 씨(28)와 강모 씨(35) 이야기다.

두 사람은 2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우리가 서로를 동거인으로 선택한 건 두 사람이 모두 ‘비혼주의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모두 연애 경험이 있지만 현재 연애를 하진 않는다. 단순히 외롭다는 이유만으로 결혼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회의감이 들었다. 꼭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생각도 없다. 결혼을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돌리자 다양한 삶의 형태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입시나 취업처럼 사회가 정한 ‘좋은 길’을 위해 달려가다 지치는 것처럼 결혼도 정말 나를 위한 것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었어요. 저도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기를 꿈꾸던 때가 있었지만 어느 순간 결혼은 꼭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심 씨)

강 씨는 지방 출신으로 대학 때부터 홀로 경기도에서 14년을 살았다. 심 씨는 함께 살던 부모님이 지난해 지방으로 이사 가면서 홀로 경기도에 남았다. 경기도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두 사람은 모두 살 곳이 필요했다. 최근 아파트 전세가가 비싸지면서 집을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각각 250만 원을 받는 자신들의 월급을 고려할 때 홀로 전세대출 이자를 갚는 건 무리였다. 결국 5년 전 직장 동료로 만난 서로가 눈에 들어왔다. 강 씨는 “혼자 살면서 전세대출 이자, 아파트 관리비, 인터넷 사용료처럼 여러 명이 함께 쓰면 줄일 수 있는 비용이 아까웠다”며 “집에 들어가는 비용은 똑같은데 둘이 함께 살면 더 경제적이지 않을까 싶었다”고 했다.

두 사람이 퇴근 후 힘들었던 일들을 털어놓으며 먹기 위해 함께 만든 음식이다. 본인 제공

두 사람은 지난해 9월 경기도에 있는 49m²의 아파트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 방 2개, 거실 1개, 화장실 1개가 있는 아파트의 전세 시세는 2억4000만 원가량. 두 사람이 정확히 절반씩 돈을 마련했고 전세대출 이자도 함께 낸다. 각자 30만 원씩 생활비를 내 생필품을 산다. 심 씨는 “상대가 청소를 잘하는 모습에 감동하다 음식 조리법을 두고 다투기도 하면서 정을 쌓아간다”며 “외롭고 아플 때 서로를 챙겨줄 수 있어 동거의 장점을 더 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함께 재무 계획도 세우고 있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은 자신들로선 자산이 든든해야 안정적인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생각 때문. 비혼은 대책 없이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설 수 있는 자립 능력을 갖춰야 가능하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최근 두 사람은 함께 돈을 모아 집을 사는 계획을 세우고 저축액을 늘려가고 있다.

“비혼주의자라고 꼭 동거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오랫동안 함께 교류할 동네 친구나 뜻이 맞는 돈독한 사람이 있어야 비혼 여성으로 잘 늙을 수 있어요. 노후를 위한 돈과 체력도 있으면 험난한 세상에서 누구에게 손 벌리지 않고 더 건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겠죠. 저희는 앞으로 함께 살면서 서로를 돌보는 ‘할머니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강 씨)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