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자유? 그 질문은 페이스북한테 해라.”
지난달 17일 아프가니스탄 점령 후 탈레반 고위급 인사가 처음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날 내외신 기자회견에 등장한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시종일관 자신만만한 아우라를 내뿜었습니다. 파죽지세로 몇 주 만에 아프간 전역을 함락시키는데 성공한 탈레반답게 기세등등한 모습이었습니다.
지난달 아프가니스탄 점령 후 스마트폰으로 기념 촬영을 하는 탈레반 군인들. 스카이뉴스
이슬람 무장조직의 리더급 인사 입에서 페이스북이라는 단어가 자연스fp 튀어나올 정도로 아프가니스탄은 전쟁의 상흔 속에서도 정보기술(IT)이 상당히 발달한 나라입니다. 아프간 정보통신 부처의 통계에 따르면 인구 3200만 명 중 30%에 가까운 1000만 명이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고, 휴대전화 보급률은 70%(2300만 명)를 넘습니다.
1994년 탄생한 탈레반은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처음 아프간에서 정권을 잡았을 때만 해도 IT 기술을 배척했습니다. “이슬람 정신에 어긋난다”면서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금지했습니다. 탈레반이 첨단 기술을 적극 받아들인 것은 2001년 미국과의 전쟁이 시작되고 권력에서 쫓겨난 뒤였습니다. 인터넷에 자신들의 메시지를 담은 콘텐츠를 올리기 시작했고, 나중에 보급된 소셜미디어도 활용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점령 후 기자회견에서 페이스북을 비난하는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 알자지라닷컴
지난달 탈레반이 대공세를 취하면서 아프간 점령이 임박하자 소셜미디어 매체들은 대응책 마련에 바빠졌습니다. 페이스북은 강력하게 탈레반 금지 정책을 몰아붙이는 쪽입니다. 페이스북은 “탈레반은 규정상 위험단체로 분류되기 때문에 서비스가 금지된다”고 거듭 확인했습니다. 페이스북의 자회사인 인스타그램과 왓츠앱도 마찬가지입니다. 탈레반 구성원들 간의 연락망으로 종종 사용된다는 의혹을 받아온 메신저 앱인 왓츠앱은 탈레반 관련 계정들을 막았습니다. 유튜브도 “우리는 탈레반 차단 정책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첨단기기 보급률이 높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여성들. USA투데이
전문가들은 탈레반과 소셜미디어의 관계에 대해 “위험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소셜미디어는 탈레반이 과거 인터넷을 막았던 것처럼 자사 플랫폼들도 금지시키지 않도록 어느 정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탈레반에 항거하는 시민들의 안전에도 비중을 둬야 합니다. 최근 소셜미디어는 아프간 사용자들에 대해 프로필의 비공개 전환이나 과거에 올렸던 내용을 삭제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탈레반이 미국 편에 섰던 아프간 조력자들을 색출하기 위해 소셜미디어 정보 흐름을 추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아프간 사용자들에게 프로파일 잠금 기능을 제공하기 시작한 페이스북. 엔가젯
조만간 탈레반은 소셜미디어 플랫폼들에게 “아프간에서 계속 운영하려면 차단시켰던 공식 계정을 해제해라”는 조건을 제시할 것으로 보입니다. 소셜미디어로서는 탈레반이 테러조직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한 국가를 대표하는 정권이 된 이상 계속 계정을 막아둘 명분은 없습니다.
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