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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품은 한강 “환부 껴안아야 생명 열려”

입력 | 2021-09-08 03:00:00

5년만에 장편 ‘작별하지…’ 출간
제주 민간인 학살에 대한 성찰담아
“‘소년이 온다’ 쓴 뒤 악몽 꿨다면
신작은 고통으로부터 날 구해줘”



한강 작가는 새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쓴 이유에 대해 “사랑은 여러 삶을 살게 한다. 깊이 사랑할 때 우리는 나의 삶뿐 아니라 사랑하는 이의 삶을 동시에 살게 된다는 걸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문학동네 제공


“제주도4·3사건을 다룬 소설,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가는 소설,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 모두 맞습니다. 하지만 하나를 고르자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소설가 한강(51)은 7일 유튜브로 진행된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9일 출간하는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에 대해 이같이 정의했다.

“사랑이든 애도든 끝까지 끌어안고 나아가겠다는 결의를 제목에 담았어요. 코로나19 상황에서 글을 쓰면서 간절하게 연결되고 싶은 마음, 밖으로 뻗어나가 닿고 싶어 하는 마음이 이 소설을 쓰는 데 영향을 줬죠.”

그가 장편소설을 펴낸 건 2016년 ‘흰’(문학동네) 이후 5년 만이다. 그는 2016년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다. 2019년 인촌상을 받았다. 그는 “2014년 6월 첫 두 페이지를 썼고, 2018년에 다음을 이어 쓰기 시작했다. 과연 완성할 수 있을까 의문을 품었다. 오랜 시간 썼기에 책이 내 손에 쥐어졌다는 게 감사하고 뭉클하다”고 말했다.

그가 제주도4·3사건을 다룬 신작을 이어 쓸 수 있었던 건 1990년대 후반 제주에서 몇 달간 살았을 때 주인집 할머니가 4·3사건 당시 학살에 대해 들려줬던 이야기를 떠올리면서다. 신작에서 소설가 경하는 친구 인선의 부탁으로 제주에 내려간다. 인선의 집에 도착한 경하는 환상 속에서 4·3사건의 피해자인 인선 어머니를 만난다. 그는 “제가 작품 소재를 정하기도 하지만 어떤 장면이 떠오르면서 스스로 알고 싶어지는 것이 있다”며 “제주에서 있었던 민간인 학살에 대해 쓸 계획이 없었는데 이 소설을 쓰게 됐다”고 했다.

소설 도입부엔 인선의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와 치료 과정이 나온다. 그는 “손가락이 절단된 뒤에 잘린 신경이 떨어져 나가면 안 되기 때문에 손가락에 상처를 계속 내서 피가 흐르게 하며 치료한다. 그러지 않으면 잘려 나간 부분이 썩는다”고 했다. 그는 “고통스럽지만 환부에 바늘을 찔러 넣어야 손가락이 살아있게 된다”며 “우리가 껴안기 어려운 걸 껴안을 때 고통이 따르지만 그것이 죽음 대신 생명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신작은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을 다룬다는 점에서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그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창비·2014년)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신작에서 5·18민주화운동 관련 소설을 쓰고 악몽에 시달리는 경하의 모습에서 그의 그림자가 비친다.

“경하의 모습이 다 제 모습은 아니지만 ‘소년이 온다’를 쓰고 난 뒤 악몽을 꾼 건 사실이에요.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삶에 죽음이 들어오는 경험을 했다면 신작을 쓰면서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오는 경험을 했어요. 이 소설은 고통으로부터 저를 구해줬습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