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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청년, 치매 노인, 경비원… 그들 유품은 삶의 흔적 담긴 CCTV”

입력 | 2021-09-09 03:00:00

[영감 어딨소]〈3〉넷플릭스 드라마 ‘무브 투 헤븐’



드라마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에서 그루(탕준상·왼쪽)와 그루의 아버지 정우(지진희)가 고독사한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기 전 기도하는 장면. 넷플릭스 제공


한 할머니가 쓸쓸하게 죽었다. 고인의 몸이 썩어 구더기가 생긴 뒤에야 아들이 어머니를 찾았다. 아들은 시신과 유품 정리를 유품정리사에게 맡긴다. 유품정리사는 할머니의 집을 정리하다 수십 년 전 아들이 사준 빨간색 내의를 발견한다. 할머니가 아들에게 양복을 사주기 위해 꼬깃꼬깃 모아둔 현금도 찾았다. 유품을 건네받은 아들은 그제야 무릎을 꿇고 오열한다. “어머니….” 올 5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한국 드라마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의 내용이다.

공개 직후 국내 넷플릭스 1위에 오른 이 드라마는 2015년 출간된 에세이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청림출판)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에세이를 쓴 유품정리업체 바이오해저드의 김새별 대표(46)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드라마의 각본을 쓴 윤지련 작가(49)의 요청으로 고독사 현장을 10여 차례 함께 다녔다. 취재를 왔다가 현장을 보고선 토하고 도망치는 사람도 있는데 윤 작가는 끄떡없었다”고 말했다.

에세이가 드라마로 만들어진 건 독특한 직업 경험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고독사나 자살로 생을 마감한 고인의 물품을 대신 정리해주는 유품정리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좋지만은 않다. 시체를 염습하는 ‘염장이’와 유품정리사를 혼동하는 이들도 있다.

윤 작가는 동아일보와의 온라인 인터뷰에서 “법조인이나 의사가 자신의 삶을 털어놓은 에세이는 많지만 사람들이 기피하는 일을 하는 이들이 쓴 에세이는 많지 않다”며 “검사나 형사가 쓴 책은 사람이 어떻게 죽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수사했는지에 초점을 맞추지만 김 대표의 책은 왜 고인이 혼자 남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써서 눈길을 끌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유품정리사는 유품을 통해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주변 이웃들이 고인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듣는 폐쇄회로(CC)TV 같은 존재”라며 “생소한 직업을 다뤘다는 점에서 시청자들도 큰 관심을 보인 것 같다”고 했다.

드라마로 만들어지면서 에피소드는 대부분 새로 창조됐다. 파급력이 큰 드라마에서 에세이에 나온 실제 사건을 다루면 고인의 지인에게 항의를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시대의 흐름을 민감하게 반영하는 드라마의 특성상 사연도 현재 상황에 맞게 바꿨다.

윤 작가는 “비정규직 청년이 산업재해를 당하고, 치매에 걸린 노인들이 고독사하고, 갑질을 당한 뒤 해고당한 경비원이 동반 자살하는 사연을 넣었다”며 “요즘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에피소드를 넣어 구성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윤 작가가 취재를 많이 하고 관련 자료를 추가로 찾아서 자신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며 “드라마 공개 후 유품정리사에 대한 시선이 많이 바뀌어 자긍심을 가지게 됐다”고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