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9일(현지 시간) 전화 통화를 갖고 양국 현안을 논의했다. 팽팽한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두 정상이 직접 대화에 나선 것은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후 이뤄졌던 2월 첫 통화 후 7개월 만이다. 두 정상은 경쟁이 충돌로 번지지 않도록 직설적으로 소통해나가면서 상호 관심사를 중심으로 협력을 모색하기로 했다고 양 측은 밝혔다.
● 바이든이 먼저 요청한 90분 간의 통화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시 주석과 통화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리며 “두 정상은 우리의 이해관계가 함께 하는 분야 및 관심과 가치, 관점이 다른 부분들에 대해 폭넓고 전략적인 논의를 했다”고 밝혔다. 이어 “두 정상은 현안들을 공개적이고 직설적으로 다루기로 하는 데 동의했다”며 “이는 바이든 대통령이 분명하게 밝혀온 대로 미중 간의 경쟁을 책임 있게 다루려는 미국의 노력 일환”이라고 설명했다.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인도태평양 및 전 세계의 평화와 안정, 번영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며 “두 정상은 경쟁이 충돌로 번지지 않도록 할 양국모두의 책임에 대해 논의했다”고 덧붙였다.
워싱턴포스트는 바이든 대통령이 구체적인 현안들을 따지기보다는 앞으로의 양국 관계에 대한 논의에 집중했다고 전했다. 중국 신화통신은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은 중국과 성의 있는 교류와 건설적 대화를 많이 하기를 원하며, 협력할 수 있는 중요하고 우선적 영역을 정해 오판과 의외의 충돌을 피하기를 원한다”고 말해다고 전했다. 또 바이든 대통령이 “미중관계를 정상 궤도로 회복시키기를 원한다”며 “미국은 기후 변화 등 중요한 문제에 있어 중국과 소통과 협력을 강화하고 더 많은 공동인식을 달성하길 기대한다”고 한 발언도 공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은 이제까지 ‘하나의 중국’ 정책을 변경할 생각이 없었다”는 말도 했다. 대만 문제에 대한 시 주석의 예민한 반응을 누그러뜨리려는 의도가 담긴 발언이다.
시 주석은 “길 없는 산속에서 만발한 꽃을 보니 이제 곧 마을”이라는 송나라 때의 시 구절을 인용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예상치 않았던 변화가 생기면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그는 중국을 ‘세계 최대 개발도상국’, 미국은 ‘세계 최대 선진국’으로 부르면서 “두 나라가 잘 협력하는 것에 세계의 명운이 달려 있으며 이는 두 나라가 반드시 답해야 할 세기의 질문”이라고 했다.
●中 “美가 양국관계에 심각한 어려움 초래” 불만
아프간 철군을 완료한 미국은 이제 중국의 부상을 집중적으로 견제하며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외교안보 정책에 집중하겠다는 방침이 확고하다. 동시에 철군 이후의 중동지역 안정과 테러 대응을 위해서는 중국과의 협력이 필요한 상황.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 외교 과제인 기후변화 문제도 중국의 협조 없이는 진행이 어렵다. 최근 존 케리 국무부 기후변화특사가 두 번째로 중국을 방문했으나 실질적인 성과를 이끌어내지 못했다.결국 미국은 앞서 천명했듯이 중국과 △경쟁(compete)할 부분 △맞설(confront) 부분 △협력(cooperate)할 부분을 나눠 분야별로 중국과의 관계를 끌고 나가겠다는 접근법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양국 간 경쟁이 충돌로 번지지 않도록 하는 문제를 논의했다’는 것은 이런 미국의 정책 방향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미중 양국은 특히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돼온 대만해협에서의 우발적 충돌이 순식간에 확전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양국 관계의 또 다른 뇌관이었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기원 문제는 끝내 미제로 남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코로나19 기원에 대해 90일 간의 재조사를 지시했으나 보건당국과 정보기관은 끝내 코로나19가 중국 연구소에서 유출됐다는 점을 입증할 근거를 확인하지 못한 채 종료된 상태다.
미국은 이달 하순 유엔총회에서 주요국 정상들과의 접촉 및 연쇄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비슷한 시기 백악관에서 쿼드(Quad·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4자 협의체) 첫 대면 정상회담 개최를 조율 중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견제 행보가 속도를 내면서 중국이 이에 어떻게 반응할지 주목된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