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日집권 자민당 총재 선출… 후보 5명 레이스 스가 불출마… 현직 프리미엄 사라져 파벌도 후보 추대 못하고 각자 지원… 3강 구도속 다크호스 2명 부상 각종 여론조사 1위 달리는 고노, ‘무라야마 담화’ 부정한 다카이치 등
새 일본 총리를 선출하는 29일 집권 자민당의 총재 선거를 앞두고 주요 후보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당내 주요 파벌 수장이 담합을 통해 사실상 특정인을 추대했던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젊은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각 파벌 또한 서로 다른 후보를 지지해 결과 예측이 쉽지 않다.
지난해 9월 집권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73) 총리는 지지율 하락으로 재집권이 어려워지자 3일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에 자민당 의원 383표와 당원 383표 등 합계 766표 중 과반을 득표한 후보가 새 총재에 오른다. 현 선거제가 도입된 1972년 이후 현직 총리가 패한 사례는 1978년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1905∼1995) 총리가 유일하다. 현직 프리미엄이 사라진 상태여서 이미 출마 의사를 밝힌 후보를 포함한 5명이 자천타천으로 거론된다.
5명 중에는 한일 관계 개선에 의욕을 보이는 후보들도 있다. 새 총리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꽉 막힌 양국 관계에 숨통이 트일 수 있다는 의미다. 2012년 말 아베 신조(安倍晋三·67) 당시 총리가 두 번째로 집권한 후 악화일로였던 양국 관계가 새 총리의 등장으로 바뀔지 관심이 쏠린다.
○ 절대강자 없는 ‘3강’
정치 명문가 후예로도 유명하다. 조부 고노 이치로(河野一郞·1898∼1965)와 부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84)는 모두 부총리를 지냈고 종조부 고노 겐조(河野謙三·1901∼1983)는 참의원 의장이었다. 특히 고노 요헤이는 1993년 일본 정부 대변인인 관방장관 자격으로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발표했다.
부친과 달리 한국에 강경 자세다. 그는 회견에서 ‘고노담화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즉답을 피한 채 “자민당 정권이 계승해온 역사 인식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일본의 주춧돌은 왕실과 일본어이며 아베 전 총리 부부가 모리토모(森友) 사학재단의 국유지 헐값 매입 과정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사건 또한 재조사하지 않을 뜻을 밝혔다. 모두 보수층을 겨냥한 행보로 풀이된다.
2019년 7월 외상 시절에는 한국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한국 정부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다며 남관표 당시 주일 한국대사를 외무성으로 초치했다. 남 대사의 말을 갑자기 끊고 “지극히 무례하다”며 버럭 화를 내 외교 결례 비판을 받았다. 2019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유학 시절 당시 워싱턴에 머물던 김대중 전 대통령 댁에서 식사를 대접받은 적이 있다. 부친 또한 김 전 대통령을 오래 알고 지냈다”고 했던 것과 다른 태도다.
유권자와 직접 소통을 즐겨 국민적 인기는 높다. 그러나 동료 의원과의 스킨십이 약하고 당과 어긋나는 목소리를 내 ‘이단아’로도 불린다. 그는 당이 반대하는 ‘탈원전’을 언급하고 보수층이 반대하는 ‘모계 일왕’ 검토를 주장한다. 지난해 4월 방위상 재직 시 당과 조율 없이 미사일방어체계 ‘이지스 어쇼어’ 철회를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고노가 속한 아소파의 수장 아소 다로(麻生太郞·81) 부총리조차 ‘총리가 되기엔 아직 이르다’며 못 미덥다는 반응을 보인다. 아소는 3일 고노가 처음 출마 의사를 밝혔을 때 “반대하지 않지만 찬성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와세다대 법학과를 졸업했고 조부와 부친 모두 중의원 의원을 지냈다. 의원 46명의 기시다파를 이끌고 있다. 온건하고 합리적인 성격으로 신사 이미지가 강하다. 2012년 12월 출범한 아베 2차 정권에서 외상으로 발탁돼 이후 4년간 자리를 지켰다.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합의 역시 당시 외상인 그가 실무를 맡았다.
아베는 현직 총리 자격으로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침략의 정의는 정해져 있지 않다” 등 과거사를 부정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반면 기시다는 강경 발언 및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킨 적이 없다. 위안부합의 때도 아베가 일본 내 후폭풍을 고민하자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결단을 내려야 한다”며 총리를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부친의 절친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1918∼1993) 전 총리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해 1986년 중의원 의원이 됐지만 1994년 자민당의 답답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해 탈당했다. 진보 정당에 잠시 참여한 후 소수당의 한계를 느끼고 복당했다.
그는 2019년 8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논란 당시 블로그에 “패전 후 일본이 전쟁 책임을 마주하지 않아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며 사태의 원인이 일본에 있다고 비판했다. 2017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한국이 납득할 때까지 위안부 문제를 사죄해야 한다”고 했고 야스쿠니신사에서 전범 위패를 분리하자고도 했다.
그는 9일 TBS 방송에 출연해 또 아베에 날을 세웠다. 고노와 달리 정부 행사에 아베의 지역구 인사를 대거 초청한 ‘벚꽃을 보는 모임’ 사건, 모리토모 스캔들을 재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 다크호스 여성 2인
‘아베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다카이치는 출마 기자회견에서 고노담화는 물론 2차 세계대전 종전 50주년을 맞아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97) 당시 총리가 현직 총리 최초로 일본의 침략전쟁을 사죄한 ‘무라야마담화’까지 부정했다. 그는 “무라야마담화는 전후 70주년의 ‘아베담화’로 정리됐다”며 일본이 일방적으로 나쁘다고 사죄한 무라야마담화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전쟁을 겪지 않은 전후세대에게 영원히 사죄를 강요할 수 없다’는 아베담화의 논리를 따랐다. 그는 총무상 시절 줄곧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했고 이날도 “참배는 종교 자유”라며 총리가 돼도 참배할 뜻을 비쳤다.
전후 최장수 총리로 당내 최다 파벌 호소다파(96명)에 영향력이 큰 아베는 4일 “이념이 유사하다”며 다카이치 지지 의사를 밝혔다. 최대 정적 이시바 혹은 당 주류가 반대하는 탈원전을 지지하는 고노가 집권하면 자신의 정책 계승 또한 어려워진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아베가 다카이치 지지를 밝혔음에도 고노와 기시다 모두 그의 지지를 얻으려 애쓰고 있다.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1, 2위 후보가 결선 투표를 벌이는데 이때 아베의 지원이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있다. 한 중진은 10일 마이니치신문에 “누가 새 총재가 되건 뒤에 아베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 젊은 의원 vs 파벌 수장
아베는 7년 8개월간의 2차 집권 내내 주요 선거에서 모두 승리했다. 인기가 높은 총리 밑에서 손쉽게 당선된 3선 이하 의원들은 선수가 높은 중진들에 비해 지역구 기반이 약한 편이다. 최근 스가 내각 지지율이 20%대까지 떨어지며 연일 사상 최저치를 경신하자 “스가가 아니라면 누구라도 좋다”며 거듭 총리 교체를 요구했다. 중의원 선거에서 자신을 또 당선시켜줄 인물을 뽑는 것이 절실한 탓이다. 파벌 수장이 특정 후보를 뽑으라고 지시해도 따르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현재 고노가 속한 아소파에서 3선 이하 의원은 고노를 밀고, 중진은 기시다를 지지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최대 파벌 호소다파의 표심 또한 아베가 지원하는 다카이치와 안정감이 돋보이는 기시다로 갈렸다. 지난해 9월 총재 선거 때 니카이파 수장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이 스가 지지를 밝힌 후 7개 파벌 중 5개 파벌이 일제히 스가를 지지한 것과 완전히 다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자민당이 세대와 파벌 사이에 서 있다”고 분석했다.
누가 총리가 돼도 빠른 관계 개선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 도쿄대 교수는 “양국 모두 자신보다 상대가 먼저 바뀌길 바라고, 관계 개선으로 얻는 인센티브 또한 크지 않다”고 진단했다. 정치 평론가 고토 겐지(後藤謙次) 또한 “기시다, 고노, 이시바 셋 중 한 명이 되면 아베 및 스가 정권 때보다는 양국 관계가 나아지겠지만 과도한 기대를 가지면 곤란하다”고 했다. 5명 모두 한국 정부가 징용배상 판결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민당뿐 아니라 야권 인사조차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모든 배상 문제가 해결됐다’는 인식을 지닌 만큼 총리 교체와 관계없이 경색 국면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