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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테러 20년, 美 단극 체제의 종언과 한국의 선택[동아시론/전재성]

입력 | 2021-09-11 03:00:00

천문학적 출혈에도 실패한 대테러전
중·러 견제하며 국익 계산하는 美
패권 노리는 中, 리더십 한계 노출
韓, 국제질서 격변기 전략적 준비해야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올해는 9·11테러 20주년이자 구소련 해체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인류 역사상 한 국가가 탈냉전기 미국만큼 전 세계에 영향력을 휘두른 국가는 없었다. 미국은 다른 모든 나라를 합친 것보다 월등한 군사력을 소유하고 있었고 강대국 대부분을 동맹으로 거느리고 있었다. 세계 유일의 리더십을 행사하는 단극(單極·unipolar) 국가였다. 미국은 21세기를 자신의 세기로 만들려고 했지만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아프간 철군은 단극 30년이 무너지는 상징적 현장이다.

지금의 국제정치 구조에서 미국이 아니더라도 단극 국가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푸념처럼 미국은 다른 국가들을 부유하게 해주고 동시에 안보를 제공해 왔는데 변변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구조다. 미 브라운대 연구에 따르면 미국이 20년 동안 대테러전쟁에 사용한 비용은 대략 6조4000억 달러(약 7475조 원)다. 같은 기간 한국 국가 예산 총액과 맞먹는다. 천문학적 액수의 대부분은 국가 부채다. 당장 대테러전을 멈추지 않으면 같은 액수가 2050년까지 이자로만 들어가야 한다. 이 상황에서 미국에 유리한 경제구조를 만들어 보려고 하지만 그 출혈은 클 수밖에 없다.

미국은 자유주의 이념이 실현된 세계를 만들고 싶어 했다. 이를 제어할 세력은 없으므로 자신의 이상과 가치를 추구하는 외교를 펼친 것이다. 자유주의가 보편적으로 옳은 이념이기 때문에 환영받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국가들은 민족주의와 자주를 앞세워 반발했고, 미국식 체제의 이식은 실패했다. 중동의 많은 국가들은 민주화되지 않았고 아프간 정부는 사상누각이었다.

구소련과 공산권이라는 적은 해체됐지만 새 위협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미국을 강하게 한 첨단 기술 일부가 소수의 테러집단에 넘어가고 미국을 위협했다. 9·11테러에서는 미국 민간 항공기가 무기가 됐고, 아프간 철군 후 탈레반에 넘어간 미국의 무기들은 또다시 미국을 위협할지도 모른다. 2008년 경제위기와 코로나 사태도 혼자 감당하기 어려웠다. 가장 큰 피해는 미국이 입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강한 나라에서 자라난 미국의 MZ세대는 대테러전쟁과 경제위기, 코로나 사태 속에서 행복하지 못했다.

단극체제가 무너져 간다고 해서 미국이 약화될 것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바이든 대통령은 8월 31일 아프간 철군 대국민 연설에서 미국은 냉정히 계산된 국익에 따라 전략 우선 순위를 재조정하겠다고 말했다. 철군 이후 아프간 정책, 대테러전쟁을 효율적으로 정비하는 한편 중국, 러시아에 대한 견제를 통해 리더십을 가다듬는 전략이다. 미국이 보유한 힘의 우위,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의 지원,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념을 기반으로 미국이 중심에 있는 규칙기반 질서를 강화해 나갈 것이다.

미국의 아프간 철군은 이미 진행된 전략 변화의 화룡점정이기도 하지만 탈냉전 단극 30년이 끝나고 강대국 경쟁의 새로운 30년이 시작됨을 알리는 경종이다. 그 변화의 크기와 새로움을 절감하는 국가가 번영할 것이다. 우선 중국이 미국을 대체하는 패권 전략을 추구한다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중국 패권의 시간이 온다 해도 몇 십 년은 번영하겠지만 단극 몰락의 전철을 밟을 것이다. 강대국 경쟁뿐 아니라 초국가적 위협에 직면해 다른 국가들과 함께하는 진화된 리더십을 갖추어야 하는데 지금의 중국이 그런 모습인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미중전략 경쟁을 선언한 미국은 정말로 중국을 잘 이해하는지, 경쟁의 마무리를 계획하고 동맹을 마지막까지 책임질 수 있는지 숙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또 이 경쟁이 대립으로 치달을 때 국제사회가 치를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도 고민해야 한다. 아프간전쟁에 함께했던 동맹국들이 미국의 급작스러운 철군에서 느낀 허망함이 미중 경쟁에서 재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어떠한가? 혹자는 미국의 아프간 철군을 1975년 사이공 철수와 비교하지만 지금의 변화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30년 전 냉전이 끝나던 1991년 전후 한국은 중국, 구소련과 수교하고 유엔에 가입했으며 북한과 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 시민사회는 목소리를 높였고 치열한 갈등 속에서 대립하는 진영들은 답을 찾기 위해 고민했다. 코로나 사태나 기후변화 등 미래의 도전은 더욱 거세다. 30년 후 지금을 돌아볼 때 역사의 격변을 전략적으로 헤쳐 나갔다는 자부심을 느끼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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