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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 이젠 부자만의 세금 아냐… 50代부터 절세대책 세워야”[서영아의 100세 카페]

입력 | 2021-09-11 03:00:00

상속세 걱정 줄이기… 조세전문 고성춘 변호사의 조언
매매사례가격 근거 징벌적 과세
사전증여 적극 활용해 절세를
가족 화목 위해 유언장 작성을



고성춘 변호사는 ‘법의 역사는 규제가 아닌 구제의 역사였다’는 것을 강조한다. 조세 행정에서도 한 사람의 억울한 사람도 없도록 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상속이라 하면 부자들만의 일로 여겨져 왔다. 아직은 맞는 말이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2020년 사망자 30만5000여 명 중 1만181명에게 상속세가 부과됐다. 사망자 중 3.34%다. 결정세액은 4조2294억 원이다.

그런데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사정이 달라졌다. 한국부동산원의 전국 실거래 평균가격을 보면 60∼85m² 규모 아파트가 전국 5억8400만 원, 서울 13억2900만 원이다(2021년 6월 현재). 매매가 뜸한 가운데 일단 거래되면 신고가를 경신하는 경우가 많다. 별다른 재산 없이 아파트 한 채만 남기는 중산층도 상속세 과세 대상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말이 된다.

고성춘 조세전문변호사(57)는 부동산 가격 등 자산 가격 상승 탓에 상속세는 더 이상 부자들만의 세금이 아니게 됐다고 단언한다. 그가 말해준 며칠 전 상담 사례가 이런 경우다.

○“내가 상속세를 내게 될 줄이야”

올 3월 88세의 부친을 여읜 A 씨. 평소 근로소득세조차 내 본 적이 없던 그는 상속세로 1억2900만 원을 내야 한다는 말에 기가 막혀 했다. A 씨 부친이 2014년 4억5000만 원에 산 아파트가 2018년 5억 원대가 되더니 2020년 8억 원대, 2021년 들어 11억 원대를 넘어섰다.

결국 상속세를 낼 여력이 없는 그는 이 집을 11억2000만 원에 팔기로 했다. 고 변호사는 부친이 1년 전에 돌아가셨다면 어땠을까를 가정해 봤다. 당시 실거래가는 8억 원대였고 상속세는 4700만 원만 내면 됐다. 상속세를 계산할 때 아파트는 유사매매사례가액(상속 전후 6개월간 유사한 부동산의 실거래가)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또 A 씨가 상속세를 낼 여력이 있었다면 부친의 사망 시점인 3월경 거래된 매매사례가액 10억 원으로 상속세 신고를 할 수도 있었다. 이 경우 상속세는 8600만 원만 내면 된다. A 씨는 세금 낼 돈이 수중에 없었던 탓에 집을 팔아야 했고 매매 가격이 시가가 되어 세금 4000여만 원을 더 부담하게 된 셈이다.

○변동 심한 매매사례가가 상속가액 결정

A 씨의 사례는 부동산 가격 급등이 상속세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상속가액 계산에 매매사례가액을 적용하는 방식이 얼마나 불합리한지 보여준다.

―상속세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모든 정책이 세금을 늘리는 쪽으로 간다는 불만이 적지 않습니다.

“국세청은 세금을 걷는 게 존재의 이유입니다. 다만 갈수록 세수 찾아내는 데 혈안이 되고 징세 과정에서 납세자를 의심하거나 부를 죄악시하는 태도가 보입니다. 세금 내는 국민 입장에서 세금이 징벌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면 어딘가 잘못된 겁니다.”

상속세 과세기준이 20년 전 그대로인 점도 짚고 넘어갈 만하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지만 인플레조차 반영되지 않았다.

상속세는 피상속인(사망자)의 재산을 모두 합산해 과세한다. 배우자가 없으면 5억 원, 배우자가 있으면 10억∼최대 30억 원까지 공제된다. 이 액수를 넘기면 상속세가 발생하는데, 누진세율이 적용된다(표 참조).

―상속 때문에 유족이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상속이 갑자기 닥치니까요. 예컨대 상속세는 6개월 이내에 현금으로 신고 납부해야 하는데 한국인이 남기는 재산의 70%가 부동산입니다. A 씨 사례처럼 유족이 따로 상속세를 낼 돈이 없다면 살던 부동산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되죠. 헐값에 내놓아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생전 10년간 증여자산 추적해 상속세에 합산

더 큰 문제는 사망 전 10년간 증여한 자산이 상속재산에 합산된다는 점이다.

“사망자의 직전 10년 치 금융거래 내역을 놓고 국세청은 면밀한 조사에 들어갑니다. 10년간 거래 내역에서 수상한 돈의 움직임이 없었는지 추적합니다. 무신고 증여를 찾아 15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합니다.” 여기서 무신고 증여가 발견되면 10년 이내 액수는 상속가액에 포함되고 증여세는 15년 전 것까지 부과된다.

“세법에서는 특수관계자 간 재산적 법률 행위는 모두 증여로 추정합니다. 그래서 가족 간 계좌이체는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증여가 아니란 걸 본인이 증명해야 하죠. 국세청의 자세는 ‘내 의심을 0으로 만들어보라’는 겁니다. 요즘은 모든 재화의 흐름이 전산화돼 있어 빠져나갈 길이 없어요.”

고 변호사는 이런 현실을 뒤늦게 알게 된 자산가 노인들 중 밤잠을 못 주무시는 분이 많다고 전한다.

“금융실명제 이전을 살아온 지금의 70, 80대들은 부부간에 ‘네 돈 내 돈’ 구분 없고 자식에게 보태주는 걸 당연시했습니다. 전세금이나 사업 자금으로 몇억 원 주고 증여 신고를 하지 않았다가 가산세까지 더해져 상속세가 어마어마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는 “상속세는 국가가 죽음의 길목에서 기다리다가 유산의 절반을 가져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 증여나 소득세 등에서 세금을 건너뛰었더라도 상속세 조사에서 모두 찾아내 가산세까지 물린다는 것이다.

○미리미리 정리해두고 떠나는 게 어른의 책임

―흔히 자식에게 끝까지 대접받으려면 재산은 죽을 때까지 놓지 말라고 하던데요.

“그걸 충실히 이행한다면 재산을 자녀 대신 국가에 헌납하는 결과가 되죠. 굳이 그 때문이 아니어도 상속은 최소한 50대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특히 가족의 화목을 위해서도 미리미리 정리해 둬야 하죠.”

준비 없이 상속을 맞게 돼 가족 간 다툼이 벌어지는 얘기는 주변에서도 흔하다. 특정 상속인에게 유산이 쏠리면 소송이 벌어지기도 한다. 유류분(상속인이 법률상 반드시 취득하도록 보장된 상속분) 반환청구를 통해 법정상속분의 절반까지 받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집값이 뛰다 보니 싸움이 더 늘었습니다. 큰아들에게 준 집이 3억 원일 때는 조용했는데, 그게 8억, 16억 원이 되니 형제들이 ‘내 몫을 떼어 달라’고 들고 일어서는 식이죠. 이걸 미리 정리해 두는 게 어른의 책임입니다. 그러려면 유언장을 미리 써볼 것을 추천합니다.”

여기서 절세의 원칙이 몇 가지 있다. △주식은 가치가 낮아졌을 때 증여하고 △미래가치가 높은 부동산부터 증여한다 △가업상속공제를 이용하고 △증여는 10년 단위로 계획을 세운다 △조손에게 바로 증여한다 △기부를 고려한다.

“궁극의 절세는 상속할 재산을 남기지 않는 겁니다. 살아생전 자녀와 배우자에게 골고루 증여하든 사회에 환원하든 자신을 위해 써버리든 말이죠. 세금은 그때그때 제대로 내는 게 가장 낫고요. 국가에 빼앗기느니 자신의 이름으로 기부해 재단을 만드는 분도 적지 않습니다.”

○조세는 ‘규제’ 아니라 ‘구제’의 마인드로

고성춘 변호사는 명실상부한 한국 최초의 조세전문변호사다. 2003년 국세청 개방직 1호로 특별채용돼 5년간 서울지방국세청 법무과장으로 일하며 법무와 조세 소송을 지휘했다. 관행보다는 원칙, 주관보다는 법리가 우선시되는 과세 풍토를 도입하려 애썼다.

2007년 말 국세청 퇴직 후에는 6개월간 절에 틀어박혀 세법 관련 책 6권을 저술했다. 국세청에서 다뤘던 조세 소송 등의 판례와 핵심 법리 등을 쟁점별로 총정리한 그의 책은 조세 분야에서 국내 최초의 사례연구집으로 평가받는다.

“조세는 규제보다 구제의 마인드로 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 법무과장 시절, 그는 조세 불복사건 결재 책임자로서 부당과세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문제제기에 대해 수많은 인용 결정을 했다. “공직의 칼은 서민이 아니라 거악(巨惡)을 잡는 데 쓰여야 합니다.”

현재는 서울 송파구에서 사무실을 운영한다. 전공은 ‘조세 불복’. ‘세금과 인생’이란 주제로 유튜브를 운영하는데, 일반인이 알기 어려운 국세청 내부 얘기부터 매일 상담에서 만나는 이들의 속사정을 통해 얻게 된 지식과 통찰을 나누고 있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