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 20주년을 맞은 11일, 미국 곳곳에선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식이 열렸다. 2977명의 목숨을 앗아간 테러가 발생한 지 20년이라는 상징성에다 그 테러가 유발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초라한 종료는 추모 분위기를 한층 엄숙하게 만들었다. 뉴욕 거리마다 ‘절대 잊지 않겠다(Never Forget)’는 문구가 내걸렸고, 전·현직 대통령 등 미국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국민 통합과 단결을 주문했다.
9·11테러는 21세기 벽두 자유주의 국제 질서에 엄청난 공포와 분노를 불러오면서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파워를 시험대에 올린 사건이었다. 냉전 승리와 함께 일극(一極) 질서를 이끌던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아프간 전쟁, 그리고 이라크 침공까지 그 파워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하지만 아프간과 이라크는 미국 파워의 블랙홀이었고, 쫓겨나듯 철수하던 미군의 굴욕적 모습에서 확인됐다.
미국은 이제 그 수렁에서 벗어나 중국과의 본격적인 패권 경쟁에 온전히 집중하려 한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취임 직후부터 이전 행정부보다 훨씬 정교하고 치밀한 전략 아래 중국을 견제·포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중국의 도전을 막아내지 않고선 미국의 지위가 위태롭다는 위기의식의 산물이다. 중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과거의 중국이 아니다’라며 대결에는 대결로 맞서겠다는 결연한 태도를 보였다.
국제 정치에서 경쟁은 불가피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테러와 기후변화, 북핵을 포함한 비확산 등에서 협력은 절실하다. 미국은 이미 20년 전쟁의 낙제 성적표를 받아들었고, 중국도 강압 외교에 대한 잇단 반발에 직면했다. 강대국 간 대결, 나아가 힘의 오만은 스스로를 황폐화할 뿐이다. 9·11테러 20년의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