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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광암 칼럼]“말년 없다”는 文정부의 임기말 캠코더 내리꽂기

입력 | 2021-09-13 03:00:00

임기 말까지 ‘보은’ 낙하산 기승
연봉 많은 금융권에 유독 군침
염치·부끄러움 아는 말년 돼야



천광암 논설실장


문재인 대통령은 3일 국회의장단 및 상임위원장 초청 간담회에서 “우리 정부는 말년이라는 게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협치하기에 좋은 시기라는 말”이라는 부연설명도 있었다. 하지만 여야 협치가 작동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여당이 독소조항투성이 언론중재법을 상임위에서 꼼수로 밀어붙인 것이 불과 한 달도 안 지난 일인 데다, 여당이 본회의에서 법안을 강행 처리할 가능성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대신 이 정부에는 ‘말년이라는 게 없는 것 같다’고 느끼는 게 딱 하나 있다면 그것은 공공기관이나 관련 공기업 등에 대한 캠코더(대선캠프, 코드인사, 더불어민주당 출신이라는 뜻) 알박기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임기 초반 낙하산은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있었다. 그러나 1년도 안 남은 ‘말년’까지 무리하게 낙하산을 내리꽂는 일은 드물었다. 문 정부가 유별나다. 국민의힘 서일준 의원이 공공기관 공시내용 등을 통해 취합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임명된 39개 부처 산하 370개 공공기관의 임원 728명(당연직 제외) 중 99명이 캠코더 인사라고 한다.

금융권 등 연봉이 센 곳을 집중 공략한다는 점도 두드러진 특징이다. 전문성과 업무 경험이 없는 문외한들을 앉히려다 보니 탈이 나는 경우도 많다. 일례로 한국예탁결제원은 최근 한유진 전 노무현재단 본부장을 상임이사로 선임하려 했으나, 거센 비판 여론에 부딪혀 브레이크가 걸렸다. 2012,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서 특보로 활동한 한 전 본부장은 금융 분야에서 일한 경험이 없다.

주택금융공사는 이달 초 공석이 된 상임이사 자리에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캠프에 참여한 장도중 전 기획재정부장관 정책보좌관을 내정해 인사검증을 하고 있다. 지난해 연봉만 2억1440만 원에 이르는 자리다. 노조는 그가 주택금융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인물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20조 원 규모 한국형 뉴딜펀드 운용을 맡고 있는 한국성장금융은 투자운용2본부장으로 현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한 황현선 연합자산관리 상임감사를 내정했다. 그가 2019년 지금 자리로 옮길 때도 금융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논란이 있었다. 그런데도 문 정부는 이들을 감싸는 데 급급하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6일 국회에서 황 감사의 전문성에 대한 질의가 나오자 “그분이 당에서도 오랫동안 일을 해서 전연 이 흐름을 모르지는 않는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2017년 현재 민주당(중앙당)의 회계자료를 보면 재산은 토지·건물·비품이 202억 원, 현금·예금이 16억 원으로, 주식·유가증권은 한 푼도 없다. 적어도 그가 당에서 일하면서 구멍가게 수준의 펀드라도 운영해 봤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임기 말 캠코더 알박기 인사가 판을 치게 된 데는, 역설적이게도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선언과 함께 문 정부가 출범한 지 불과 두 달 뒤, 김은경 당시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은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에 대해 조직적이고 은밀한 물갈이 작업을 시작했다. 여기에는 온갖 편법이 동원됐다. 심지어 꽂아 넣으려는 인사에게 환경부 직원이 자기소개서를 대신 써주고 예상 면접 질문지까지 미리 건넸다. 그 결과 김 전 장관은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으며, 신 전 비서관도 유죄 판결을 받았다. 법원이 이들을 준엄하게 단죄한 것은 낙하산 인사라는 그릇된 관행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낙하산을 염두에 둔 캠코더들은 ‘이 판결 덕분에 다음 정권이 임기 도중에 바꿀 일은 없어졌다’고 내심 환호하는 듯하다. 그렇지 않으면 임기 말 낙하산 러시가 벌어질 일이 없다.

그래도 같은 진보 계열에 속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성과를 차치하더라도, 낙하산 인사를 바로잡아 보려는 노력은 했다. 김대중 정부는 공공기관장 임명에 외부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추천제를 처음 도입했다. 노무현 정부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공정성 담보를 위한 절차적 틀을 만들었다. 문 정부에서는 이런 노력을 찾아보기 어렵다. 임기 말까지 억대 연봉으로 가는 막차에 올라타려는 사욕만 남아 판을 친다.

차기 대통령 선거까지는 이제 6개월이 남았다. 문 정부의 사실상 말년도 딱 이만큼 남은 셈이다. 소득주도성장과 부동산정책의 실패로 ‘민생 낙제점’을 받은 이 정부가 염치나 부끄러움마저 잊으면, 반년 뒤 뭐가 남을지 궁금하다.

천광암 논설실장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