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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미스터 위기관리’[특파원칼럼/박형준]

입력 | 2021-09-14 03:00:00

스가 총리, 아베 의식해 한일 정상회담 소극적
퇴임 후 본래의 온건파, 실용주의 모습 기대해



박형준 특파원


도쿄 올림픽 개회식을 나흘 앞둔 7월 19일이었다. 청와대 내부에선 이날 오전만 해도 문재인 대통령이 개회식에 참석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와 첫 대면 정상회의를 한다는 분위기였다. 한국 측이 요구한 ‘성과 있는 회담’에 대해 한일 외교당국이 실무 협의를 끝냈기 때문이다. 일본의 수출 규제 철회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복원을 맞교환하는 형태였다.

하지만 이날 오후 일본 측이 한국 정부에 연락을 했다. “최종적으로 스가 총리의 재가를 받지 못했다. 미안하다.” 청와대는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고 “의미 있는 협의를 했지만 정상회담 성과로 삼기에는 미흡했다”고 발표했다. 문 대통령 숙소로 이미 잡아 놓은 도쿄 데이코쿠호텔 예약도 부랴부랴 취소했다.

복수의 한일 외교 소식통들이 밝힌 당시 상황이다. 외교 경험이 적은 스가 총리는 외교를 외무성에 맡겼다. 하지만 ‘수출 관리 운용 재조정을 협의해 나간다’ 수준의 느슨한 외무성 실무안을 이례적으로 거부했다. 이는 분명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를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본다. 대한(對韓) 수출 규제는 아베 전 총리가 한국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2019년 7월 꺼내 들었다.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둔 스가 총리가 아베 전 총리의 대표 카드를 꺾기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기자는 이달 29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스가 총리가 재선하길 바랐다. 임기 3년을 보장받으면 ‘아베 계승’에서 벗어나 자신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을 테니. 하지만 스가 총리는 3일 총재 선거 불출마를 선언해 1년 만에 총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스가 외교를 돌이켜보면 한국에 강경했던 아베의 그림자를 지울 수 없다. 지난해 9월 16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미국을 기축으로 하고 이웃 나라와 안정적인 관계를 지속하겠다”고 밝혔지만, 사실상 한국은 예외였다. 지난해 한중일 정상회의 의장국인 한국이 회의 개최를 타진했을 때 그는 방한에 부정적이었다. 올해 6월 영국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때 문 대통령이 약식대화라도 하고자 했으나 스가 총리는 자리를 뜨며 거부했다. ‘징용 배상 판결 해결이 먼저’라는 것이다. 일본 총리관저에서 스가 총리를 예방했던 한 한국 인사는 “스가 총리가 메모지를 준비해 수시로 보면서 말하더라. 정부 입장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러니 관계 개선을 위한 여지를 찾을 수 있겠는가.

그나마 성과라면 한일 관계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은 것 정도다.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선 여성 극우 정치인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전 총무상이 과거사를 반성한 담화를 모두 부정하고, 총리가 되더라도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할 뜻을 밝히는 걸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부실 대응으로 비판을 워낙 많이 받아 좀 어색한 감이 있지만 스가 총리의 별명은 ‘미스터 위기관리’다. 아베 정권에서 7년 8개월 동안 행정부 2인자인 관방장관을 지내며 정권의 폭주를 막는 역할을 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해 언론 인터뷰에서 “스가 정권에는 스가 관방장관이 없는 게 약점”이라고 말할 정도로 능력을 인정했다. 10월이 되면 스가 총리는 총리의 짐을 벗고 자민당의 원로 의원으로 돌아간다. 온건파이자 실용주의자인 그가 막후에서 한일 간 위기관리 역할을 하는 본모습을 보여주길 고대한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