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부스터샷(백신 추가 접종)에 관한 논란은 도덕적 논쟁에 가까웠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완료율이 높은 선진국들이 델타 변이의 전파력에 놀라 부스터샷을 서두르자 “구명조끼를 여러 벌 챙기는 동안 백신 빈국은 익사하고 있다”며 이들의 백신 독식에 비난이 쏟아진 것이다. 이번엔 부스터샷의 효과를 놓고 과학적 논쟁이 뜨겁다.
▷미국식품의약국(FDA)과 세계보건기구(WHO) 소속 과학자 등 18명은 최근 영국 의학전문지 랜싯 기고문에서 “일반인에게 부스터샷이 필요하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접종 완료 후 시간이 지나면 경증 감염을 예방하는 효과는 떨어지지만 중증 질환을 막는 효과는 75세 이상 고령층을 제외하면 지속된다는 것이다. 몸 안의 항체는 줄어도 면역 세포가 바이러스를 오래도록 기억해 중증 진행을 막는다. 연구자들은 혈전, 심근염, 길랭바레 증후군 같은 백신의 희귀 부작용은 2차 접종 후 더 자주 나타나는데 3차 접종을 서두르다간 부작용의 위험도 커질 것이라고 했다. 또 부스터샷이 강한 면역 반응을 야기하므로, 하더라도 접종 양을 줄여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 같은 신중론은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장을 포함해 부스터샷을 밀어붙이는 미국 정부 전문가들과 충돌한다. 미국은 접종 완료 8개월이 지난 16세 이상에게 20일 부스터샷을 개시한다고 발표부터 한 뒤 17일 화이자를 대상으로 FDA 승인 절차를 밟는다. 이들에게 나침반 역할을 하는 건 올 7월 가장 먼저 부스터샷에 들어간 이스라엘이다. 접종 완료 후 5개월이 지난 이들을 대상으로 화이자 3차 접종을 하고 있는데 2차 접종만 했을 때보다 중증 예방 효과가 5, 6배 높았다. 하지만 랜싯 기고자들은 이스라엘의 단기 데이터로는 장기 효과를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은 부스터샷의 부작용에 대한 데이터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부스터샷이 시기상조라고 지적하는 전문가들도 면역 체계가 약한 이들에게는 부스터샷을 권한다. 한국 예방접종전문위원회는 백신 접종 완료 후 6개월이 지난 뒤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한 부스터샷을 권고한 바 있다. 부스터샷이 일반인들에게 확실한 이득이 될지는 더 많은 데이터가 쌓여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