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일상에서 누구나 질문을 받았을 때 말이 막혀 우물거리다가 엉뚱한 말을 하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그냥 웃고 넘기지만 정신분석 상황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실수를 좋은 기회로 여기면서 꼬리를 잡고 흔들어서 추가적 연상을 일으키고 무의식에 접근하는 자료가 충분히 쌓이면 피분석자의 마음 흐름을 읽어낸 결과를 해석으로 제공합니다. 그러니 분석에서는 말실수가 있을 때 의도적으로 말꼬리를 잡는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피분석자가 침묵에 빠져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 분석가는 어떻게 할까요? 말하기를 꺼리고 있는 내용을 말했을 때 느낄 두려운 마음을 짐작해서 다룹니다. 이처럼 침묵하고 있다고 해서 잊어버린 것은 아닙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은 때로는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망각과 기억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붙어 다닙니다. 그러니 무엇을 잊고 있는지를 알면 왜 기억하지 못하는지를 짐작할 수도 있습니다.
말실수를 영어로 ‘혀 미끄러짐(slip of the tongue)’이라고 부릅니다. 직설적이지만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언어학 연구자들은 혀가 잘 미끄러져야 언어 기능이 순조롭게 발달한다고 합니다. 이에 반해 심리학적으로 살피면 ‘혀 미끄러짐’은 성취가 아닌 실수입니다.
말실수의 사촌 격으로 프로이트도 관심을 가졌던 ‘단어 놀이’가 있습니다. 언어학적으로는 ‘혀 놀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데 말장난이라고도 하겠습니다. 일단 말실수를 하고 나면 “미끄러진 김에 쉬어 가려고” 다른 말로 덮으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말실수를 한 사람은 늘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뜻이 아니었다. 여러분이 내 말을 곡해한 것이다”라고. 하지만 당황한 마음에 그런 식으로 계속하다가 더 큰 말실수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면 결국 침묵하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우기는 쪽으로 돌아섭니다. 망각이라는 현상은 전의식에 주로 머뭅니다. 전의식은 얕아서 무의식과 달리 의식적으로 노력하면 어느 정도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잊었을 때 생각이 날듯하면서 안 나고, 안 나다가 갑자기 나는 겁니다.
무의식의 힘은 의식의 통제권에 속하지 않으므로 제멋대로, 힘차게 작용합니다. 말실수는 ‘덮고 싶은 무의식적 소망’을 ‘터뜨리고 싶은 소망’이 이긴 결과입니다. 무의식 내부에서 한구석은 가리고 싶고 다른 구석은 열어젖히고 싶다가, 갈등과 긴장의 압력이 지나치게 올라가면 결국은 터집니다. 그래서 비밀을 끝내 지키기는 어려운 겁니다.
정신분석 상황이 아니어도 말실수를 꼬리 삼아 살살 잡아당기면 무의식적 소망이라는 몸통에 도달할 수 있지만 분석 상황과 사회적 상황은 방법의 차이가 있습니다. 비교적 협조적인 상황인 분석에서는 피분석자가 이야기하는 추가 연상이 도움이 되고, 사회적 상황에서는 당황해서 실수로 추가되는 말이 단서가 됩니다.
실수가 그냥 단순한 실수일까요? 정신분석으로 읽으면 실수는 실수이면서 동시에 실수가 아닙니다. 숨겨진 무의식적 동기가 드러난 행위입니다. 혀가 미끄러져서 엉겁결에 입 밖에 뱉은 말이어도 뒤에 다 의도가 있다는 말입니다. 말이나 글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으니 조심해서 말하고 신중하게 써야 합니다.
끝으로, 말실수와 망각의 해석법은? 그 사람이 살아온 길에 쌓여 있는 관련 자료와 비교해서 차분하게 검토하면 객관적 해석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