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황학동 중앙시장 ‘옥경이네 건생선’의 반건조 갑오징어구이. 임선영 씨 제공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저녁놀이 질 무렵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에서 생선구이 냄새가 났다. 이웃집의 저녁 밥상에는 생선구이가 올라갈 것이다. 혼자 집에 들어가 생선을 구워 먹는 것은 혼자 영화를 보는 일만큼이나 내키지 않는다. 문득 생각난 곳이 있어 급히 발길을 돌려 서울 중구 황학동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사람 냄새가 나는 중앙시장이 있다. 시장으로 들어가면 칼국수, 찹쌀도넛, 떡집을 지나 반건 생선을 맛있게 구워 주는 종합해물집 ‘옥경이네 건생선’이 있다. 식당 간판에 자신의 이름을 건 주인은 전남 목포 출신인데 고향의 가족이 어업에 종사한다. 가족이 잡아 올린 생선을 해풍에 건조시켜 서울로 올려 보내면 사장은 손님의 취향에 맞게 구이, 찜, 조림, 탕으로 맛있게 조리해 내어준다.
이곳에는 언제 가도 제철이 아닌 생선이 없다. 맛있는 계절에 생선을 잡아 반건으로 저장해 두기 때문이다. 메뉴판 자체가 종합수산시장 같다. 민어, 병어, 서대, 장대, 간재미, 아귀, 대구, 갑오징어, 박대, 금풍생이…. 종류만 해도 15가지 정도 된다. 먹기 전 두 가지 즐거운 고민을 한다. 첫째는 생선의 종류, 둘째는 조리법을 선택하는 일이다. 이 어려움 속에서도 ‘대동단결 만장일치’를 보는 메뉴가 있으니 갑오징어구이다. 갑오징어구이 하나를 주문하고 민어찜과 서대구이를 곁들였다. 다른 식당에서는 ‘어디 민어와 서대를 오징어 뒷줄에 세울까’ 하겠지만 특별히 이곳은 오징어, 그것도 갑오징어가 ‘갑’이다.
갑오징어를 굽는 동안 아주머니는 콩나물냉국과 김치, 미역 등 밑반찬을 가져다 놓는다. 밥반찬이라기보다 술안주로 안성맞춤이며 냉국은 생맥주만큼이나 시원하다. 드디어 갑오징어구이가 나왔다. 오징어가 도톰해 살점을 찢기보다는 칼집을 내어 썰어주는데 한 조각이 성인의 손가락 크기다. 뽀얀 살점이 토실토실하고 탄 듯 안 탄 듯 노릇하게 구워져 향이 기가 막히다.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칼집을 내어 씹어 먹기가 좋고 소스를 찍으면 살점 깊숙이 스며든다. 별다른 양념 없이도 반건 갑오징어는 풍미가 뛰어나다.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nalge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