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이 지난해 대선 전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예측불가 행동으로 미중 충돌이나 핵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을 우려해 비밀리에 중국 측을 접촉, “공격시 미리 알려주겠다”며 안심시키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의 저명 언론인인 밥 우드워드가 트럼프 행정부의 실상을 폭로한 그의 세 번째 저서에 담긴 내용으로, 당시 군을 비롯한 트럼프 행정부의 내부 상황이 얼마나 불안정하고 긴박했는지를 보여준다.
14일(현지 시간) 워싱턴포스트(WP)와 CNN방송 등에 따르면 WP의 부편집장인 우드워드와 로버트 코스타 기자가 곧 출간할 예정인 저서 ‘위기(Peril)’의 일부 발췌록에는 이런 뒷이야기가 담겨 있다. 밀리 의장은 남중국해에서 미국의 군사훈련,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적 발언으로 미중 갈등이 고조되던 지난해 10월 리줘청(李作成) 중국 합참의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국이 중국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고 중국이 믿고 있다는 첩보를 듣고 중국 측 카운터파트와 통화한 것. 그는 서로가 5년 간 알고 지낸 사이임을 상기시킨 뒤 “우리는 당신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이 공격할 경우 미리 전화를 주겠다. 놀랄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밀리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불복 주장 속에 의회난입 사태까지 발생한 직후인 올해 1월 8일 다시 전화 통화를 갖고 불안해하는 리 의장을 안심시키려 했다. 그는 “미국은 100% 안정적”이라고 했지만 리 의장은 쉽사리 불안감을 거두지 못했다고 한다. 밀리 의장은 이날 인도태평양사령부에 연락해 군사훈련을 연기하라고 했고, 실제 훈련이 연기됐다.
밀리 의장은 이 통화를 계기로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례적으로 고위간부 회의를 소집해 핵무기 발사 절차를 검토하면서 “대통령이 명령을 내리면 반드시 나도 관여해야 한다”며 자신을 거쳐 가지 않는 군사공격이 없도록 하라고 단속했다. 간부들의 눈을 일일이 쳐다보면서 하나씩 구두로 다짐을 받았고, 이를 맹세로 받아들였다. 밀리 의장은 당시 툭하면 당국자들에게 고함을 지르며 음모론에 빠져 있는 트럼프가 심각한 정신적 쇠약(mental decline)에 걸려 있다고 생각했고, 언제라도 제멋대로(go rogue) 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밀리 의장은 또 조용히 국가안보 관련 현황을 점검했으며 자신의 고위참모들은 물론 NSA 폴 나카소네 국장 등에게 “모든 상황을 상시적으로 철저히 살피라”고 지시했다. 일부에서는 이를 합참의장의 월권이라고 지적할 수 있겠지만, 밀리 의장은 당시 핵전쟁이나 우발적인 미중 충돌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믿었다고 우드워드는 책에서 기록하고 있다.
이런 책 내용은 당장 공화당의 반발을 불렀다. 상원 정보위 소속인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은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합참의장이 중국공산당에게 기밀을 유출하는 반역적 행동을 저질렀다”며 경질을 요구했다.
한편 책에는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대선 패배 후 의회난입 사태 직전까지 상황도 상세히 기술돼 있다. 그의 참모인 스티브 배넌은 지난해 12월 30일 개인 별장인 플로리다주 마라라고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던 트럼프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워싱턴으로 돌아오라. 위기 상황”이라고 재촉했다. 그는 1월6일 시위에 대해 “우리가 1월6일에 망할 바이든을 묻어버릴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