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앞두고 음식하는 며느리.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8월 말, 각 지역 맘카페는 한 달이나 남은 ‘추석’에 관한 이야기가 일찌감치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추석까지는 시간이 꽤 남아있었지만, 시가 방문과 음식 만들기 등 고된 노동을 해야하는 며느리들 사이에서 명절은 여간 큰 이벤트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평택·안성의 한 맘카페는 이달 초 “추석 압박이 오고 있다. 안 갈 수도 없고, 벌써부터 스트레스”라는 글이 올라왔다. 이에 한 여성은 “(시부모가) 오지말라고 해줬으면 좋겠다. 추석 압박에 어제 악몽까지 꿨다”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임산부도 예외는 아니다. 임신 33주차라고 밝힌 예비 엄마는 “세 시간 거리에 사는 시부모가 저 힘들다고 본인들이 올라오겠다고 하시더라”고 토로했다. 그는 “(시부모가) 오면 기본 2박 3일”이라며 “정말 제가 힘들까봐 걱정돼 오시는 게 맞을까”라고 한탄했다.
예전과 달라졌다? 여전히 주방일은 ‘며느리 몫’
추석을 앞두고 각 지역 맘카페에 올라온 글.
명절이 예전과는 달라졌다지만, 여전히 ‘명절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기혼 여성들은 많은 것으로 보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이후 두 차례의 명절에서 집합금지 등으로 만남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형성됐으나, 이번 추석에 완화된 가족모임 방역 수칙이 시행되면서 며느리들의 속앓이가 다시 시작됐다.
특히나 결혼 후 첫 명절을 맞이하거나 차별없이 자란 세대의 불만은 더욱 크다. 한 기혼 여성은 “결혼 전 명절은 꿀 같은 휴가였지만 지금은 없어졌으면 하는 노동의 주간”이라고 했다. 또다른 여성은 “결혼 후 첫 명절에 시가 식구들이 당연한 듯 앞치마를 던져주더라. 남편은 우리집에서 ‘사위=손님’이라며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술상만 받았다”고 회상했다.
TV 등 매체에서는 ‘남성도 함께 만드는 차례상’이라며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게 과연 변화일까’라는 의문을 제기한 여성들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 집안 차례상을 차리는 데 여성들이 주도적으로 음식을 만들면 남성들은 그 옆에서 함께 하거나 도와주는 식으로 보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기혼 여성은 이를 두고 “집안 딸들은 시키지도 않는다. 그저 명절 음식 등 주방일은 ‘며느리 몫’이라는 생각이 기본으로 깔린 것 같다”며 “오죽하면 최근에는 며느리에 일을 덜 시키고는 ‘나같이 좋은 시모가 세상 어디에 있느냐’고 자찬까지 하겠는가”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당연한 듯 시가→친정 순서 ‘불만 폭발’
참고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마치 하나의 ‘법칙’처럼 명절에는 시가부터 가는 것을 두고도 ‘불평등’하다는 불만이 있다. 연휴 첫날부터 며느리들은 차례상에 올릴 음식을 만들고, 명절 당일 오후가 돼서야 친정으로 향하는 문화로 인해 가사 노동을 여성이 자연스럽게 맡게된다는 지적이다.
딸만 가진 집안의 서러움은 더욱 크다고 한다. 외동딸이라고 밝힌 한 여성은 “이같은 명절 문화가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 부모는 매번 명절을 쓸쓸하게 보낼 것”이라며 “돌아가신 후에는 남편 집안 조상 모시느라 내 부모는 차례상도 못 받는 것 아니냐”고 씁쓸해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명절 기간 여성의 불평등한 가사 노동에 대해 “여전히 과거에 묶여 해결되지 못한 채 (여성에게) 과도한 역할분담이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구 교수는 “강제적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각자의 가정에서 문제를 인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집안 내 남성의 역할을 강조했다. 구 교수는 “남성들은 성평등이 좋아졌다고만 말할 것이 아니고, 솔선수범해야 한다”면서 “(남성들이) 적극적으로 부모 세대를 설득하는 등의 행동이 누적된다면 (윗세대도) 같이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조혜선 동아닷컴 기자 hs87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