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들 ‘닷새 연휴’ 영업 딜레마
‘약식 분향소’서 숨진 자영업자들 추모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가 16일 오후 10시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부근에서 최근 극단적 선택을 한 자영업자들을 추모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비대위는 영등포구와 경찰이 분향소 설치를 제지하자 인근 길바닥에 약식으로 분향 공간을 만들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서울 구로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박모 씨(55)는 최근 자녀들에게 “이번 추석 연휴 때 가게 일을 좀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조금이라도 매출을 올리기 위해 추석 연휴(18∼22일)에도 가게 문을 열 계획인데 종업원들을 출근시키면 인건비 때문에 손해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씨는 “30년 동안 장사를 하며 13명까지 뒀던 직원 수를 이제는 6명으로 줄였다. 월세도 대출을 받아 내고 있다”며 “오죽하면 자식까지 불러 연휴 장사를 하겠느냐”고 말했다.
○ 자영업자들, 추석 장사 두고 고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자영업자들이 추석 연휴에 점포 문을 열지 말지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16일 동아일보가 만난 수도권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매출이 나빠질 대로 나빠진 상황에서 5일 동안 문을 닫자니 한 푼이 아쉽다”는 의견과 “문을 열자니 적자만 심해질 것 같아 영업을 포기했다”는 반응이 팽팽히 엇갈렸다.대출 부담이 크거나 많은 임차료를 내고 있는 점포들은 조금이라도 매출을 올리기 위해 연휴에도 영업하겠다는 반응이 많았다. 서울 중구 다동에서 국밥집을 하는 박모 씨(62)는 “머릿속에서 올해 대출받은 5000만 원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질 않는다. 전기료도 안 나올 수 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을 열기로 했다”고 말했다.
명절 연휴는 가족 단위 외식이 많아 그동안 자영업자들에겐 ‘대목’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나마 있던 손님도 끊기는 시기가 됐다고 했다. 서울 중랑구에서 정육식당을 운영하는 김성원 씨(35)는 장사를 시작한 지 7년 만에 처음으로 연휴 영업을 포기했다. 김 씨는 “원래 연휴 기간은 매출이 2배 이상 늘어나 고향에도 내려가지 못할 정도로 바쁜데 올해는 아무 기대도 없다”고 했다. 구로구에서 숯불구이점을 운영하는 김모 씨(61)도 마찬가지다. 김 씨는 “하루 매출이 1만∼2만 원 수준이라 영업을 하는 의미가 없다”며 “오죽하면 직장인인 아들에게 돈을 빌려서 운영 자금을 대고 있겠나. 자식에게 너무 민망하다”고 말했다.
홍어 전문점을 운영하는 서모 씨(70)는 “최근에는 폐지 줍기를 시작했다”고 했다. 가게 문을 열어둬도 한 달에 5만 원도 벌지 못해 밥값이라도 벌자고 시작한 일이라고 한다. 서 씨는 “박스를 많이 주우면 하루에 못해도 7000∼8000원은 버니 한 끼 식사비는 버는 셈”이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 ‘자영업자 분향소’ 제지당하자 약식으로 진행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는 16일 최근 극단적 선택을 한 자영업자들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하고 기자회견을 하려 했지만 영등포구와 경찰에 제지를 당했다. 그러자 비대위는 인근 길바닥에 약식으로 분향소를 만들어 추모 행사를 진행했다. 김기홍 비대위 대표는 “당국이 분향소 설치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방역법 위반으로 규정해 우리를 범법자 취급하고 있다”며 “돌아가신 분들의 넋을 기리고자 분향소를 준비하는 것까지 막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경찰 관계자는 “분향소 설치는 관할 구에서 감염병예방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보고 설치를 금지해 경찰이 이를 지원한 것”이라며 “기자회견의 경우 집회로 변질될 우려가 있어 제지했다”고 설명했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전혜진 인턴기자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수료
최미송 인턴기자 한국외국어대 영문학과 졸업
이정민 인턴기자 이화여대 사회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