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7일까지 ‘엑스칼리버’ 주연 다음은 ‘프랑켄슈타인’ 1인 2역 “뮤지컬의 정석이 되고 싶습니다 죽을때까지 만족 못할 것 같지만”
서울대에서 성악을 전공한 카이는 동료, 후배들에게 발성법을 가르친다. 이를 위해 ‘Your Stage’라는 연습실도 최근 마련했다. 그는 “누군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공연만큼 짜릿하다”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카이(본명 정기열·40)만큼 다채로운 색을 머금은 뮤지컬 배우가 또 있을까. 사랑에 사무친 베르테르를 연기하다가 복수에 미친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한을 노래한다. 고귀한 황태자부터 신을 향해 울부짖는 벤허, 나아가 인간이 빚어낸 괴물 연기까지.
‘이 배우는 언제 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쉼 없이 무대에 서는 그는 여러 배역을 맡아도 ‘기복이 없다’ ‘믿고 본다’는 평을 듣는다. 이는 빼어난 가창력과 탄탄한 연기력은 물론 배우가 지닌 올곧은 색깔 때문인지 모르겠다. “뮤지컬의 정석이 되고 싶다”는 그는 지금껏 이뤄낸 것보단 앞으로 이뤄야 할 것들을 먼저 꺼내놓았다. “죽을 때까지 제 무대엔 만족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겸손한 말과 함께.
이번엔 또 새 모습이다. 11월 7일까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펼쳐지는 뮤지컬 ‘엑스칼리버’에서 카이는 주인공 ‘아더’를 연기한다. 풋풋한 모습을 지닌 소년부터 분노, 배신을 딛고 끝내 희망을 노래하는 캐릭터다. 2019년에 초연 무대에 이어 두 번째로 무대에 오른다. 14일 만난 그는 “이상하게 이번 작품이 재밌다. 왜 그런지 고민해 보니 팬데믹을 겪으며 ‘오늘 무대가 영원하지 않다’는 걸 인지했기 때문”이라며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르는 무대를 더 기쁘게 누리기로 했다”며 웃었다.
아더는 굴곡이 많은 캐릭터다. 출생의 비밀, 왕이 될 운명, 친구의 배신, 실연 등 여러 사건이 몰아친다. 심장을 쥐어짜는 왕관의 무게도 견뎌내야 한다. 카이는 “‘분노’는 노래를 더 크게 부르거나 동작을 크게 하는 등 표현할 도구가 많다. 하지만 ‘희망’이란 감정을 연기하기란 정말 어렵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마저도 그만의 올곧은 방식으로 풀어냈다. “결국 악보, 대본에 모든 답이 있어요. 음표와 박자가 가진 감정, 느낌을 그대로 표현해요.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과정도 필수입니다.”
농익은 아더 연기로 관객과 만나는 그는 슬슬 다음 작품도 시동을 걸려고 준비 중이다. 11월부턴 3년 전 호평을 받았던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에서 1인 2역을 선보일 예정이다. “배우로서 한계에 도전하는 작품”이기에 애정이 더 크다고 했다.
올해로 뮤지컬 데뷔 11년을 맞은 그는 “이제야 무대가 조금은 편안해졌다. 다만 ‘주인공 역할이 벼슬’이라는 태도나 ‘당치도 않은 오만함’을 끝없이 경계한다”고 했다. 배우로서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는 ‘과잉 감정’ ‘연기를 위한 연기’를 꼽았다. 최근에야 새롭게 깨달은 점도 있다며 귀띔했다.
“상대역을 노래, 연기로 이기려 해선 안 됩니다. 상대를 빛내는 게 결국 제가 가진 힘이자 캐릭터를 확고하게 드러내는 방법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