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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앞 민주당 강경파의 역주행[오늘과 내일/길진균]

입력 | 2021-09-18 03:00:00

7개 상임위원장 넘기고도 ‘뒤끝’ 폭주
“우리만 옳다” 오만의 끝은 심판뿐



길진균 정치부장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후의 총선을 거울삼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총선 직후 가까운 참모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를 회상하며 “지금은 개혁을 해야 한다는 말은 맞는데, 현실성은 있는지 봐야 한다”고 했다.(강민석 전 청와대 대변인, ‘승부사 문재인’)

180석이라는 예상을 뛰어넘는 승리를 거둔 직후였다. 어떤 일이 있었길래 문 대통령은 ‘거울’을 언급했을까.

노무현 정부 2년 차인 2004년 열린우리당은 17대 총선에서 탄핵 역풍으로 152석을 얻는 대승을 거뒀다. 이후 여당은 국가보안법, 과거사법, 사립학교법, 신문법(언론관계법) 등 이른바 ‘4대 입법’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결과는 참혹했다. “우리는 옳다”며 선명성만 강조한 강경파들로 인해 노무현 정부는 순식간에 민심을 잃고 추락했다.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대표)으로 있으면서 여야 협상을 이끌었던 이부영 전 의원의 페이스북 글이다.

“한나라당에서도 국가보안법 개정을 논의할 수 있다는 연락이 왔다. 여당이 국가보안법 완전 폐지를 주장하는 바람에 협상은 깨졌다. 열린우리당은 분열했고 정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일부 과격파 의원들은 필자를 ‘배신자’라고 손가락질했다. 중진의원들은 폐지파 의원들의 살기등등한 기세에 눌려 침묵했다.”

여의도 정치에서 강경파의 주장을 경계하는 건 이들은 목적 달성을 위해서 같은 당 안에서도 자신들의 선악(善惡) 기준에 따라 네 편 내 편을 나누고, 결과적으로 자기편에게도 피해를 끼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또 존재감을 보이고, 세를 넓혀가기 위해 늘 새로운 ‘적’을 만들어낸다. 이는 당을 넘어 사회 전반을 갈등과 분열로 몰아간다. 적폐세력, 토착왜구 등은 그 한 예일 뿐이다.

검찰개혁 시즌2도 마찬가지였다. 청와대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와 안착을 문 대통령의 레거시(유산)로 삼고 검찰개혁을 마무리할 뜻이 있었다. 하지만 공수처법 처리 이후 새로운 ‘적’이 필요했던 강경파들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의 완전한 박탈)과 ‘윤석열 징계=검찰 개혁’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었다. 결과는 4·7 재·보선 참패였고, 야권 대선 후보 윤석열의 탄생이었다. 내부에서도 질타가 쏟아졌다.

이후 강경파들은 시선을 언론으로 돌렸다. 여기에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이 맞물리면서 폭주를 누구도 말리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한 중진 의원은 “경선 투표가 코앞이다.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 큰 강경파와 열성 지지층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대선을 앞둔 민주당 지도부는 일단 ‘오만 프레임’에 다시 빠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7개 상임위원장을 야당에 다시 넘겨준 것도, 언론중재법 처리를 앞두고 8인 협의체를 만든 것도 전술의 일환이다. 그러나 법조계의 위헌성 지적, 국제적 언론기구와 인권단체 등의 우려에도 “우리는 옳다”는 강경파들의 태도는 꿈쩍하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선을 넘으면 또 다른 혼란과 갈등이 벌어질 것이고, 국민이 실어준 힘을 엉뚱한 데 낭비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강 대변인은 썼다. 하지만 정치적 생존이 더 중요한 강경파들은 임기 말 대통령의 우려쯤은 개의치 않는다. “우리만 옳다”는 권력의 오만을 바로잡은 건 늘 국민의 심판뿐이었다.

길진균 정치부장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