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방 美-최대시장 中 갈등 속
‘미국 편’임 숨기지 않는 日정부
기업들, 中협력 강화하며 위협 대비
동맹 견지하며 민간으로 해법 찾아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과거에도 중국을 향한 미국의 불만이 여러 형태로 표출되고는 했지만, 최근의 대립은 차원이 다르다.
미국 정부는 중국 기업인 화웨이와 SMIC에 대한 부품 수출을 광범위하게 규제하기 시작했다. 일본이 한국에 대해 일부 반도체 소재의 수출을 규제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가 느꼈던 분노를 생각하면 중국이 느꼈을 분노도 가히 짐작이 간다. 더구나 수출 규제는 미국 정부가 취한 다양한 조치의 일부에 불과하다. 중국은 미국의 수출 규제에 대항하기 위해 ‘수출관제법’을 제정했다. 미국뿐 아니라 미국에 협력하는 국가들에 보복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미중 마찰은 일본에 큰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은 일본의 가장 큰 시장이고 미국은 두 번째로 큰 시장이면서 가장 중요한 우방이다.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해칠 수도 없고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도 없는 갈등 상황에서 일본 정부와 기업이 취하는 일련의 조치를 보면, 과거의 경험에 기반한 그들 나름의 생존 전략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국 편임을 감추지 않는 정부와 달리, 일본 기업은 중국 기업과의 협력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일본 기업은 미국의 압박이 중국의 성장세를 일시적으로 둔화시킬 수는 있어도 꺾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과 일본은 1986년 반도체협정을 맺었고 일본 기업에 불리한 이 협정이 체결된 후 일본의 반도체 산업이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 역사를 알고 있는 중국은 미국에 순응해서 시장을 빼앗기기보다는 극단적인 대결을 통해서라도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 타협에 이를 것이라고, 일본 기업가들은 예상한다. 중국 시장의 성장 잠재력은 여전하다고 보기 때문에 물밑에서 중국 기업과의 협력 체제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도요타는 올 3월 칭화대 산하의 중국 기업과 합병회사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연료전지차의 기간 시스템을 중국에서 생산하기 위해서다. 세계 판매대수에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도요타자동차는 중국 시장에서도 약진 중이다. 중국 현지 생산을 위한 합병회사의 설립은 전기차 시대로의 이행에 대비한 포석이다.
일본 기업인들은 매년 대규모 대표단을 구성해 중국을 방문한다. 중국 정치인과 관료, 기업인들과 경제협력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방중단의 대표는 일본 굴지 기업의 회장인 경우가 보통이다. 일본 정치인은 동행하지 않는다. 민간 주도이기 때문에 정치적 분쟁과는 거리를 둘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중국의 위협에 대비한 준비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일본 상사는 전 세계 희토류 광산에 투자하고 있고, 자동차 관련 업계는 4월에 설립된 ‘전지 서플라이 체인 협의회’를 매개로 공급망 정비를 위해 연대하기 시작했다. 전자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적층세라믹콘덴서(MLCC)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술력을 가진 일본 기업 무라타제작소는 중국 매출 비중이 50%를 넘지만 현지 생산이 아닌 일본 국내 생산을 고집한다.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일본 정부는 고급 인력에 대한 영주권 요건을 대폭 완화했지만, 최근 과학 연구자의 입국 심사를 다시 강화하기로 했다. 역시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