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아트로드]울릉도의 꽃과 나무
성인봉 정상 부근에서 내려다본 나리분지. 주변에 높은 봉우리들이 잇따라 서 있다. 오른쪽 끝이 송곳처럼 뾰족 솟은 추산.
울릉도의 밤 해변에는 ‘어화(漁火)’ 꽃이 핀다. 오징어 잡이 어선이 집어등을 밝힌 불이 밤바다에 두둥실 떠 있는 어화는 울릉팔경 중의 하나다. 울릉도의 원시림 속에는 각종 약초가 있고, 해안절벽에는 수령 2000년이 넘는 향나무 군락지가 있다. 특히 울릉도의 무성한 대나무 숲은 특산품인 오징어를 건조하는 데 꼭 필요한 재료를 제공한다. 대나무 한 그루 없는 독도를 ‘죽도(竹島)’라고 부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반도 본토에서는 볼 수 없는 신기한 꽃과 나무로 가득한 울릉도 숲으로 떠나자.
● 쥐라기 공원으로의 여행
도동항 해안절벽 향나무.
성인봉 고사리 군락지.
주황색 꽃잎에 점박이 무늬가 있는 섬말나리.
밤하늘 별처럼 흰꽃이 반짝이는 섬바디.
● 울릉도 대나무와 오징어
나리분지에 있는 우데기 투막집.
성인봉 정상 부근에서 대나무 숲을 만났다. 대나무의 일종인 섬조릿대였다. 산비탈에 모노레일을 깔고 부지깽이 나물을 재배하는 ‘윗 통구미 마을’에도 곳곳에 대나무 숲이 있었다. 한 가구(4명)이 살고 있는 죽도에도 섬조릿대 군락지가 이어진다. 20년 째 매년 울릉도를 답사해 온 조성호 씨(서울 중동고 지리교사)는 “울릉도의 대나무는 특산품인 오징어를 말릴 때 요긴하게 쓰이는 도구”라고 설명했다.
새벽 4~5시. 어부들이 밤새 잡은 오징어가 항구에 도착하면, 어판장에서 기다리던 아낙네들은 칼을 쥐고 오징어 배를 가른다. 내장을 꺼내고 씻은 오징어는 지름 1.5cm 가량되는 대나무에 차례차례 꽂힌다. 오징어 한축(20마리)을 꿰어 바닷가 바람에 널어놓는다. 오징어의 머리 부분에는 몸체가 잘 펴지도록 ‘탱깃대’(8cm 길이의 대나무)를 또 끼운다. 대나무에는 ‘울릉도산(등록 제467호)’이란 표식이 있어 울릉도 오징어를 증명한다.
● 전라도 어부가 해류를 타고 울릉도로
울릉도는 현재 경북 울릉군에 속해 있지만, 지명 중에는 전라도 방언이 많다. 독도에 있는 ‘보찰 바우’가 대표적이다. ‘보찰’은 바위에 붙어 있는 갑각류인 ‘거북손’을 칭하는 전라도 방언이다. 울릉도 주민들도 거북손을 보찰이라고 부른다. ‘독도’라는 명칭도 ‘독섬’(돌섬의 전라도 방언)에서 유래했다고 학계에서는 분석한다.
울릉도 개척령이 반포(1882년)되기 이전부터 전라도 흥양지방(여수, 고흥반도)의 어부들이 매년 배를 짓기 위해 울릉도를 찾았다. 여수 거문도에서 대한해협을 지나가는 쿠로시오난류와 동해안을 타고 흐르는 동한해류를 타면 울릉도까지 손쉽게 도착한다고 한다.
“여수 거문도 어부들이 추삼월 동남풍을 이용하여 돛을 달고 울릉도에 가서 나무를 벌채하여 ‘새 배’를 만들고 여름내 미역을 채집해 두었다가 가을철 하늬바람(북서풍)이 불면 목재와 해조류, 고기를 가득싣고 하늬바람에 돛을 달고 남하하면서 지나온 포구에서 판매하거나 물물교환을 하면서 거문도로 귀향하였다.” (전경수 ‘울릉도 오딧세이’)
섬을 비워놓는 ‘공도(空島)정책’을 펼쳤던 조선시대 정부는 주기적으로 수토관(搜討官)을 파견해 주민들을 체포해서 육지로 데리고 나왔다. 1882년 울릉도 검찰사로 파견된 이규원은 울릉도에 조선인이 140명이 있었다고 보고했는데, 그 중 115명이 전라도 출신이었다.
배를 짓던 어부들이 북서풍이 불기를 기다렸던 곳은 울릉도 서북쪽 ‘대풍감(待風坎·바람을 기다리는 언덕)’이다. 이 곳에는 관광용 모노레일이 설치돼 있어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다. 그러나 지난해 태풍으로 모노레일은 운행이 금지돼 있다.
●울릉도의 미식
울릉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오징어 내장탕.
독도새우는 도화새우, 물렁가시붉은새우, 가시배새우 등 3총사가 있다. 독도새우는 한 접시(20마리 가량)에 12~16만원 정도로 비싸다. 그러나 일단 시키면 손바닥 길이만한 크기에 놀라고, 먹어보면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으면 도동항에서 ‘독도새우 튀김’을 맛보는 것도 좋다.
사진·글 울릉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