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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글록, 미국 사회를 조준하다

입력 | 2021-09-18 03:00:00

◇글록/폴 배럿 지음·오세영 옮김/344쪽·1만9800원·레드리버




사진출처=pixabay

2018년 한 유튜버가 권총으로 실험을 했다. 헬리콥터를 타고 100m 상공으로 올라간 뒤 장전된 권총들을 자유 낙하시킨 것. 다른 총들은 땅에 떨어진 충격으로 격발되거나 망가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글록사의 ‘글록19’ 모델은 달랐다. 땅에 떨어져 튕겨 오른 뒤에도 고장이 나거나 총알이 발사되지 않았다. 총을 주운 사격수가 방아쇠를 당기자 그제야 총구가 화염을 뿜었다.

글록의 안정성과 내구성을 보여준 이 영상은 미군 특수부대가 왜 이 총을 채택해 주요 무기로 사용하는지 짐작하게 한다. 월스트리트저널,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등을 거친 기자 출신의 저자는 ‘미국의 권총’이 된 글록의 탄생 배경과 확산 과정을 풀어냈다.

글록의 변천을 좇다 보니 책은 자연스레 20세기 미국 총기 시장의 흐름을 짚는 역사서 성격을 지닌다. 사회상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전후 미국엔 사냥을 위한 소총 생산의 비율이 높았으나, 급격한 도시화로 사냥이 줄었다. 사람들은 휴대가 편한 권총을 선호했고, 권총에 강점을 보였던 글록사의 인기는 치솟았다.

책은 끔찍한 총기 사고, 정치권 로비 뒷이야기를 포괄한 논픽션이기도 하다. 2007년 버지니아공대에서 32명을 사살한 조승희를 비롯해 많은 총기난사범들이 글록 총기를 사용했다. 미국 경찰도 허리춤에 글록 권총을 찬다.

총기 사고가 발생할 때면 총기 반대 여론이 격화한다. 제조사인 글록은 당연히 전미총기협회(NRA)처럼 총기 규제에 강경히 반대할 것 같으나 실상은 다르다. 저자는 글록이 “NRA와 총기 옹호론자를 방패막이 삼아 실속을 차리며 총기 규제를 무력화한 흑막”이라고 묘사한다. 중도적 입장에서 교묘하게 총기 규제 운동을 억누른다고 보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글록을 창립한 가스통 글록의 개인사도 흥미롭다. 철도노동자 집안 출신으로 중년의 나이에 총을 만든 그가 총기를 팔아 대성공을 누린 일화는 한 편의 영화 같다. 글록이란 새 키워드로 바라본 미국 사회, 정치가 새롭게 읽힌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