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광의 빅데이터 부동산] 정체 퇴근길에서 본 ‘고급 브랜드’ 선망 대상이 되다
[동아DB]
어느 때보다 우월한 지위에 선 조합이 시공사 교체를 추진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공통적으로 ‘고급 브랜드’에 대한 갈망을 꼽을 수 있다. 현재 시공사 교체를 추진하는 사업장 중에는 여러 건설사가 함께 참여하는 컨소시엄 형태가 꽤 있다. 이 경우 브랜드 이름이 ‘○○ 래미안푸르지오자이’와 같이 길어지거나 생소한 외래 합성어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사업 지연 우려 넘어서는 ‘고급 브랜드’ 열망
이렇듯 고급 브랜드의 힘이 강력하게 작용하는 부동산시장은 마케팅 분야 세계적 권위자인 이타마르 시몬슨 스탠퍼드대 교수가 주장하는 절대가치 이론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시몬슨 교수가 말하는 절대가치란 ‘소비자가 제품을 사용할 때 실제로 경험하는 품질 또는 가치’를 의미한다. 시몬슨 교수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의 폭발적 발전으로 소비자가 제품을 일상에서 사용하고 느끼는 ‘진실의 순간’에 대한 정보가 넘쳐나기 시작했고, 반대로 과거 기업들이 주입했던 브랜드 이미지에 대한 영향력은 약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파트라는 재화는 품질이 브랜드를 압도하는 대세 흐름에서 비켜나간 듯 보인다. 수년 전 철근 이슈로 세간의 화제가 된 인천 한 아파트는 현재 해당 신도시의 최고가 아파트로서 위용을 떨치고 있고, 도지사와 시장까지 나서 하자보수 민원을 감당해야 했던 동탄2신도시 한 아파트도 주변 단지에 전혀 뒤지지 않는 시세를 유지하고 있다.
강남 입지 품고 태어난 고급 브랜드
이러한 사례들은 아파트 가치를 결정짓는 품질에 단지 시공 품질만 있는 것이 아님을 시사하는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조사에 따르면 서울 강남 아파트 분양가에서 ‘시공’과 관련된 건축비의 비중은 30%에 불과하고 나머지 70%는 대지비, 즉 ‘땅값’이다. 아파트 품질 요소에는 시공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땅의 지분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땅의 품질은 그 땅이 어디에 위치하는가에 따라 결정되는데, 결국 해당 아파트 단지의 ‘입지 수준’이 소비자에게 매우 중요한 품질 기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시공 문제로 진땀을 흘렸던 아파트들은 해당 단지를 품은 신도시의 개발 호재가 쏟아지면서 ‘땅의 품질’, 즉 입지가치가 상승하며 과거 악재를 날려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시공 품질에 덧붙여 입주민 삶의 질을 결정하는 ‘평면구조’ 역시 최신 설계가 적용된 신도시 택지지구의 평면이 오래전 인허가를 받은 강남 재건축의 ‘옛날식’ 평면보다 훨씬 훌륭한 경우가 많은데도 신도시와 강남 집값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시공과 평면 품질보다 ‘입지 품질’이 아파트 가치에 결정적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을 입증한다.
내 집 마련의 힌트, 내 눈에 자주 아른거리는 아파트
[자료 | 서울시설공단]
단순 노출 효과가 강하게 작동하려면 ‘무의식으로 노출되는 빈도’가 중요한데, 퇴근길 정체가 심하면 심할수록 한강변 아파트의 노출이 늘어날 테고, 심리적으로도 ‘퇴근길에 찌든 내 현실’과 ‘한강변 여유로운 아파트에서 삶’이 대조되며 한강변 아파트에 대한 선망이 더 강해지는 것이다. 이를 좀 더 확대해 생각해보면 단지 한강변 고급 아파트뿐 아니라, 퇴근길 강변에서 노출되는 서울 아파트, 특히 정체가 심해 단순 노출 효과와 심리적 효과가 극대화되는 곳에 자리한 아파트는 무의식적으로 선망의 대상이 돼 높은 집값 상승을 기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2020년 서울 도시고속도로 연간분석’에 따르면 올림픽대로 외에도 평균 통행 속도 30㎞/h 미만인 상습 정체 구간 도로가 있는데 강변북로, 동부간선도로, 서부간선도로 순이다(지도 참조). 강변북로를 곁에 둔 한강변의 한남·옥수동·성수동 아파트가 왜 그리 선망의 대상이 되는지, 그리고 서부간선도로를 사이에 둔 경기 광명시 철산동 재건축, 구로구 독산동 신축 아파트가 왜 높은 집값을 유지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비록 구축이지만 동부간선도로를 낀 월계동·장안동 아파트 중에서 3.3㎡당 4000만 원 넘는 시세를 자랑하는 단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꽉 막힌 퇴근길, 내 눈에 자주 아른거리는 아파트 브랜드는 무엇인가. 거기에 내 집 마련의 힌트가 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07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