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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찢고 온 드라마 속엔… 마음뚫고 온 ‘고민세포’가 조잘조잘

입력 | 2021-09-23 03:00:00

[영감 어딨소]〈4〉웹툰 원작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
누적조회 32억회 웹툰 드라마화… 30대女 고민, ‘세포 대화’로 담아
국내 드라마서 드물게 ‘실사+애니’
등장인물-배우, 세포-애니로 표현 “만화적 상상력 최대한 살리려해”



‘유미의 세포들’ 웹툰과 드라마의 등장인물을 비교한 모습. 단발머리의 웹툰 주인공 유미(왼쪽 위)와 귀여운 세포들(왼쪽 아래)은 드라마에서 배우 김고은(오른쪽 위)과 3차원(3D) 애니메이션 캐릭터(오른쪽 아래)로 각각 표현됐다. 네이버웹툰·티빙 제공


“선배, 오늘 할 일 많이 남았어요?”

회사에서 야근을 하던 30대 여성 유미(김고은)에게 후배 우기(최민호)가 말을 건넨다. ‘무슨 뜻이지?’ 유미의 머릿속은 갑자기 복잡해진다. 파란 옷을 입은 ‘이성(理性) 세포’가 “별 의미 없는 질문이니까 그냥 할 일 다 끝났다고 답하면 돼”라고 유미에게 충고한다. 다른 세포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던 이때, 갑자기 망토를 두른 ‘명탐정 세포’가 등장해 “늦게까지 함께 야근하길 바라는 거다”라고 소리친다. 평소 유미를 마음에 두고 있던 우기가 야근이 끝난 뒤 함께 집에 가자는 신호를 보냈다는 것. 순간 유미의 가슴이 콩닥거린다. 오랫동안 연애를 하지 않은 유미의 마음속 깊이 숨어 있던 ‘사랑 세포’가 뛰어나온다.

17일부터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과 tvN에서 방송 중인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의 한 장면이다. 이 드라마는 2015∼2020년 네이버웹툰에 연재된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제작됐다. 웹툰은 누적 조회수 32억 회로 약 500만 개의 댓글이 달린 화제작이다. 드라마도 공개 직후 웹툰의 장점을 잘 살린 참신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웹툰이 드라마화된 건 웹툰과 드라마의 핵심 타깃인 젊은 직장인의 고민을 잘 담아내서다. 작품은 평범한 직장인 유미가 직장생활과 연애에서 느끼는 생각 및 고민을 세포라는 이색 소재로 표현했다. 다이어트 압박에 시달리던 유미가 분식집으로 달려가는 건 ‘출출 세포’가 폭주해서이고 유미가 소개팅에서 만난 구웅(안보현)과 데이트하기 전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하는 건 ‘패션 세포’ 때문이라는 발랄한 상상력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드라마 기획과 제작을 맡은 조문주 스튜디오드래곤 CP는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평범한 30대 여성인 유미가 무엇을 먹을까, 좋아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대답할까 고민하는 웹툰의 작품세계가 매력적”이라며 “일상이 드라마틱한 순간이 되고 귀여운 세포들의 응원을 받으며 유미가 성장하는 이야기가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웹툰을 그린 이동건 작가는 “드라마는 누구나 공감하기 좋은 내용으로 만드는 게 여러 부분에 이점이 있다”며 “일, 사랑, 인생에 대한 고민을 귀여운 로맨스와 함께 표현한 웹툰 내용에 공감 포인트가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매주 연재되는 웹툰은 한 회를 1, 2분 안에 볼 수 있는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일상의 단면을 짧게 담아내는 형식이다. 반면 드라마의 방송시간은 편당 1시간 가까이 된다. 이 작가는 “회당 10여 컷에 불과한 웹툰은 특정 사건이나 상황을 짧은 호흡으로 그려야 하고 인물의 감정 흐름이 매끄럽지 않아 아쉬웠다”며 “상대적으로 호흡이 긴 드라마에선 이런 부분들이 잘 보완됐다”고 말했다. 조 CP는 “웹툰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시트콤 형식을 빌려 드라마를 만들었다”며 “웹툰의 기발한 만화적 상상력과 구성의 묘미를 최대한 살리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드라마 제작진은 시즌 1과 2를 동시에 제작 중이다. 등장인물은 실사 배우로, 세포들은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한 건 국내 드라마에선 이례적인 시도다. 조 CP는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새로운 형식의 영상을 만들 수 있었다”며 “실사와 애니메이션이 자연스럽게 연결돼 하나의 이야기로 볼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이 작가는 “앞으로도 많은 웹툰이 만화를 찢고 나와 영상화되기를 드라마 덕후 입장에서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