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1등 항해사를 세 번째로 했던 배에서의 일이다. 선장이 나를 불러 선장 진급 교육을 시켰다. 배에서는 예측불허의 일이 빈번하고 도와줄 사람도 없으므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A, B, C의 세 가지 해결책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플랜 A, 플랜 B, 플랜 C인 셈이다. 이후 사회에 진출해 보니 그분의 조언이 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정년퇴직 후 무엇을 할 것인가? 나름의 플랜 A가 있다. 잘 안될 때는 어쩌지? 플랜 B와 플랜 C가 있으니 안심이 된다. 선장으로 다시 근무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3등 항해사로 사회 초년병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막내이다 보니 잡다한 일을 했다. 선장과 선배 항해사들이 시키는 일이 나에게 떨어졌다. 영어회화도 익히고 면허 시험도 준비해야 해서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과외의 일들로 하루를 다 써버리니 점차 불만이 쌓였다. 외국인들과 만나 영어에 재미를 붙일 때였다. 도선사 한 분이 “It is not my job(그건 내 일이 아니다)”이라는 문장을 사용했다. 2등 항해사가 추가적인 일을 시키면 몇 번인가 “not my job”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를 불러서 “not my job”이라는 말은 상사에 대한 답변으로 부적절하므로 사용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부정적인 말이 인간관계에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사회에 나와서 처음 듣는 충고였다. 일이 주어지면 “예, 하겠습니다” 하고 긍정적인 답을 하는 습성을 붙이게 됐다.
“선장님, 안 됩니다”라는 말은 35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잊을 수가 없다. 과연 내 판단이 옳았는가? 선장과 나는 선교에서 항해 당직을 서고 있었다. 갑판에서 작업 중이던 갑판수가 바다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선장도 동시에 이를 보고 나에게 명령했다. “2항사, 배를 오른쪽으로 돌려.” 키를 잡은 내가 배를 돌리려는 순간 앞에 접근하는 선박이 보였다. 나는 “선장님, 앞에서 내려오는 선박이 있어서 안 됩니다”라고 다급히 말했다. 나는 갑판수가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앞의 배가 지나간 뒤 낙하지점으로 돌아갔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이틀에 걸쳐 수색작업을 했지만 결국 그를 찾지 못했다. 선장은 “그때 바로 배를 돌렸어도 되었는데” 하고 혼잣말을 했다. 충돌 위험을 무릅쓰고 선박을 돌렸다면 어땠을까, 아쉬운 생각이 든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