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청와대 페이스북) 2021.9.22/뉴스1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제76차 유엔총회에서 자신이 제안한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 종전선언’에 대해 야당을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있는 것을 두고 “‘종전선언에 대해 참 이해가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종전선언은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종전선언→평화협정 체결→항구적 평화체제)’ 중 첫 단추 부분에 해당한다.
문 대통령은 3박5일간의 방미(訪美)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는 공군1호기 내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종전선언 관련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또한 정치권에서 격렬한 논의가 진행 중인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있어서는 ‘여러 문제제기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기내에서 기자간담회를 연 것은 취임 이래 이번이 네 번째다. 앞서 문 대통령은 Δ2017년 6월29일 서울→워싱턴 D.C.(첫 미국 방문) Δ2017년 9월22일 뉴욕→서울(제72차 유엔총회 참석 후) Δ2018년 12월1일 아르헨티나→뉴질랜드(G20 정상회의 참석 후)까지 총 세 차례 기내간담회를 가진 바 있다.
최근 문 대통령과 출입기자들 간 직접 대면은 올해 5월10일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 따른 기자간담회 후 4개월 만이다. 이번 기내간담회는 당초 20분으로 예정됐으나 이보다 13분을 초과해 33분간 진행됐다.
◇‘3자나 4자 종전선언’ 2007년 이미 합의…주한미군 철수·한미동맹과 무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2018.09.19/뉴스1 © News1
문 대통령은 “국내 언론에서 보도된 반응, 특히 야당 반응을 보면 ‘종전선언에 대해 참 이해가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종전선언은 사실 2007년 (노무현 정부 당시) 10·4 남북공동선언에서 ‘3자 또는 4자에 의한 종전선언을 추진한다’고 이미 합의가 됐던 것으로, 그때도 3자는 남북미였고 4자는 남북미중을 말하는 것이었다. 남북미를 추진하되 중국이 원하면 함께할 수 있다는 그런 뜻이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때부터 이미 3자 또는 4자에 의한 종전선언에 대해 미국도 중국도 동의가 있어왔던 것”이라며 “다만 이후 비핵화라는 상황이 더해져 종전선언을 비핵화 협상과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지에 대한 문제만 한미 양국 간 협의해온 것이다. (그리고) 이제 다시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기 때문에 (종전선언을 다시) 제안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제안한 것은 2018, 2020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은 평화협정과는 다른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그는 “종전선언은 평화협상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제 전쟁을 끝내고 평화협상에 들어가자’는 일종의 정치적 선언”이라며 “법적 지위는 달라지는 것이 없고, 정전협정에 의해 이뤄지는 관계는 그대로 지속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뿐만 아니라 종전선언과 주한미군 철수나 한미동맹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며 “주한미군 주둔은 양국 합의해서 하는 것으로, 북미관계가 정상화되고 북미 수교가 이뤄지고 난 이후에도 한미가 필요하면 한미동맹을 하고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그룹 BTS(방탄소년단)이 2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주유엔대표부에서 ABC 방송과의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다. (청와대 페이스북) 2021.9.22/뉴스1
문 대통령은 “과거에는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넘어가기 위한 평화협상 과정 중에 종전선언이 있는 것이라 문제가 단순했지만 지금은 북한 핵이 상당히 고도화되고 진전돼 평화협상과는 별개로 북한 비핵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그래서 종전선언이 어느 시기에 어떤 정도의 효과를 가지고 구사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보다 전략적 검토가 필요한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그러나 종전선언이 필요하다는 데 대해선 다들 공감대가 있고, 남북·북미대화가 시작되면 어차피 (진전)될 문제”라고 강조했다.
◇베이징 올림픽 때 회담 미지수…“남북관계 마지막까지 노력하는 것이 책무”
문 대통령은 내년 2월 중국 베이징 동계올림픽 때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면서도 신중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문 대통령은 “(베이징 올림픽을 포함해) 앞으로 남북회담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저도 뭐라고 말씀드릴 수 없다”며 “다만 국제적 계기로는 베이징 올림픽이 있기 때문에, 혹시 그런 계기가 남북 간 관계 개선의 계기로 활용할 수 있는, 그런 것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3차례 남북, 2차례 북미 회담 성과가 있었지만 (남북관계 개선이) 멈춘 상태”라며 “좀 더 진전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마지막까지 노력하는 게 정부가 해야 될 책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와 함께 올해가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30주년이 되는 해였던 만큼 “북한이 호응해 유엔총회 계기를 잘 활용한다면 남북관계를 개선할 계기도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가졌었는데 그건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당시 북한의 핵실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때문에 전쟁 위기까지 고조됐던 한반도 상황을 현 정부가 해소했다며 그 점은 “성과가 있었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또 하나의 성과로는 “북한을 국제사회로 나오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 회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 결렬로 이 같은 분위기가 더 이어지지 못했다면서 “(회담 실패가) 매우 아쉽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시간만 보낼 수는 없고 대화 공백이 길어지면 평화나 안정이 흔들릴 수 있는 만큼 이제는 다시 빨리 북한과 대화할 때라고 생각한다”며 “결국 북한도 대화와 외교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북한에 유리하다고 판단할 것이라 믿는다”고 부연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대화 복귀 신호가 있는지’ 묻는 질문에는 “지난 번 미사일을 발사하기는 했지만 원래 약속했던 핵실험이나 ICBM 발사시험은 모라토리움(정지)을 유지해 미국이 대화를 단념하지 않을 정도의 ‘저강도 긴장고조’만 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북한은 대화의 문은 열어둔 채 여러가지 고려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현 시점에서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에 대한 평가를 말해달라’고 요청하자 “제가 다른 자리에서 (평가를)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오늘 한 번 더 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언론법 “문제제기 충분 검토돼야”…기자들과 끝까지 스킨십
여야가 합의한 국회 본회의 상정 시한(27일)이 코앞으로 다가온 언론중재법 개정안과 방역 사안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문 대통령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청와대가 주도해서 이뤄지는 입법은 아니다”면서 한 발 거리를 둔 후 입장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가짜뉴스, 허위보도 등으로 인한 국가적 피해나 개개인이 입는 피해가 컸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당정 간 원론적 합의가 있었고 그에 따라 당쪽에 의해 입법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라며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지금 언론이나 시민단체나 국제사회에서 이런저런 문제제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점들이 충분히 검토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 8월 말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밝힌 입장과 비슷하면서도 ‘비판에 대한 검토’에 좀더 힘을 실은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당시 문 대통령은 “언론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둥이고, 국민의 알 권리와 함께 특별히 보호받아야 한다”며 “따라서 관련 법률이나 제도는 남용의 우려가 없도록 면밀히 검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다른 한편, 악의적인 허위보도나 가짜뉴스에 의한 피해자의 보호도 매우 중요하다”며 “신속하게 잘못된 보도를 바로잡고, 정신적·물질적·사회적 피해로부터 완전하게 회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방역과 관련해서는 조심스러우면서도 자신있는 모습을 보였다. 문 대통령은 “현재 1차만 전국민 70% (백신접종을) 넘어선 상태이고 접종완료(1+2차)는 다음 달 말쯤 되면 70%를 넘기게 될 것으로 보는데 그때 되면 우리도 위드 코로나를 검토해야 한다”며 “아마 다음 달쯤 되면 그런 계획을 보다 가시적으로 국민들께 알려드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베트남 공여로 알 수 있듯 이제 우리는 충분히 여유가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를 도울 수 있는 여건이 됐다고 말씀드리고 싶다”며 “여유분을 활용해 도울 계획이고 국민 접종에 필요한 물량은 전혀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백신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느냐는 부분은 이제 걱정할 단계는 다 지난 것 같고 사실 올해도 확보 물량은 문제가 없다”며 “다만 초반에 (백신이) 들어온 시기가 좀 늦어서 초기 진행이 늦어진 측면이 있는데 그 부분을 빨리 따라잡아서 다음 달쯤 아마 백신 접종률이 세계에서 앞서가는 나라가 될 것이라 믿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나는 ‘상생과 협력의 한반도’를 위해 남은 임기 동안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한 것에 대한 의미를 풀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이에 대해 “우리 정부의 숙명 같은 것”이라며 “코로나 상황 때문에 우리 정부는 위기 정부일 수밖에 없다. 임기 마지막이고 대선이 다가온다고 해서 여유가 생긴다거나 그럴 수 없고 마지막까지 위기 관리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정부”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방미 일정이 촘촘하게 짜여진 탓에 귀국길에 피곤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기자들과 끝까지 스킨십을 하려 노력했다.
문 대통령은 기내간담회를 시작하면서 “다들 지치셨을테고 저도 녹초가 다 됐다”며 “(그럼에도) 유엔총회 성과도 있었고 미국 ABC 방송과도 인터뷰까지 했기 때문에, 마무리는 우리 언론인들과 하고 싶어 자리를 마련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사회를 맡은 박경미 대변인이 간담회를 끝내기 위해 마무리 발언을 요청하자 사양하면서 “추가로 궁금한 게 있으면 한 두 분 더 (질문을) 받겠다”고 자청하기도 했다.
(공군1호기=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