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현지 시간) 미국 백악관과 상무부는 삼성전자, 미국 인텔, 대만 TSMC 등 반도체 제조사 관계자를 모아 ‘반도체 대책 화상회의’를 열었다. 3번째 대책회의다. 앞선 두 차례와 마찬가지로 반도체 수요처인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 자동차 제조사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정보기술(IT) 기업도 참석했다.
브라이언 디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과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이 주재한 회의에서 미 행정부는 삼성전자 등 반도체 기업에 45일 안에 재고, 수요, 물동량 등의 정보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대체적인 현황을 점검하거나 미국 내 생산시설 확충을 제안한 앞선 2차례 회의와 비교하면 훨씬 강경한 조치를 내놓은 것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미국 정부가 국방물자생산법(DPA)을 동원해 기업 정보 제출을 강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1950년 한국전쟁 때 군수물자 생산을 위해 만들어진 DPA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조 바이든 행정부가 코로나19 백신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발동한 바 있다.
반도체 업계는 미국 정부가 예민한 기업 내부 정보까지 요구한 것은 그만큼 공급난을 심각하게 보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1년 가까이 이어지는 반도체 부족은 내년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최근 말레이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지역 반도체 패키징 공장이 멈춰서며 병목 현상이 심화됐다. 포드, GM 등 북미 자동차 공장 10여 곳은 몇 주씩 생산을 중단했다. 동남아 부품 의존도가 높은 일본 도요타는 이달 글로벌 자동차 생산량을 계획 대비 40%나 감산했고 현대자동차도 울산, 아산 공장 생산라인을 일부 시간만 가동하거나 주말 특근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생산량을 조절하는 등 전 세계적 문제로 확산됐다. 상황의 심각성 때문에 미국 정부가 민간에만 맡겨선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적극 개입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삼성전자 측은 “정보 제공 시한과 주제만 정했을 뿐 아직 구체적인 항목을 미국 정부가 얘기하지 않아 대응 방침을 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정부가 내부 정보를 요구하는 것은 이례적이지만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