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디킨슨, 시인의 정원/마타 맥다월 지음·박혜란 옮김/316쪽·2만 원·시금치

‘그녀가 나무 밑에서 잠들었는데/나만 기억하고 있었지/나는 말없이 그녀의 요람을 건드렸고/그녀는 그 발을 알아차렸다/진홍 정장을 차려입었으니/봐!’
19세기 미국의 대표 여류시인 에밀리 디킨슨(1830∼1886)의 이 시는 알뿌리식물 튤립을 표현하고 있다. 튤립의 솟은 꽃봉오리를 ‘그녀의 진홍 정장’에 비유했다. 나무 밑에 잠든 그녀를 깨운 정원사는 디킨슨 자신이다.
생전에 작품을 거의 발표하지 않은 디킨슨은 청교도 집안에서 독신으로 살다 생을 마친 ‘은둔 시인’이다. 조경 연구가인 저자는 디킨슨의 정원에 주목하며 그의 작품세계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디킨슨에게 예술적 영감의 원천은 그가 정성스레 가꾼 정원 식물과 자연이었다.
현재까지 발견된 그의 편지 1000여 통에는 압화(押花·꽃이나 잎을 납작하게 눌러 만든 장식품)도 들어 있다. 디킨슨은 그의 시에서 압화를 ‘비단 현찰’이라고 불렀다. ‘비단 현찰로 지불할게요/당신의 가격을 말씀하지 않으셨지요/한 문단에 꽃잎 하나/가까이 있을 거예요’
저자는 1990년대 여행을 하다 우연히 디킨슨의 정원과 만났다. 그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애머스트에 보존돼 있는 그의 정원을 구체적으로 묘사해 독자들이 이곳을 마음속으로 충분히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디킨슨이 계절별로 키운 식물과 이와 관련된 시, 일화들을 조곤조곤 소개한다.
155컷의 식물 그림과 사진, 디킨슨과 관련된 식물 목록과 설명도 담았다. 식물 소개가 계절별로 적혀 있어 디킨슨의 정원에서 1년을 보낸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