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들/이혁진 지음/196쪽·1만4000원·민음사

실직 후 하수관 설치 현장에서 일하게 된 선길에게 희한한 임무가 주어진다. 현장 식재료 비닐하우스를 멧돼지로부터 밤새 지키는 것. 그는 한 달간 살을 에는 추위와 고립의 공포에 떨며 보초 근무를 선다.
문제는 멧돼지가 없다는 것. 현장 소장은 이를 알면서도 보초를 계속하게 한다. 현장 관리자인 소장에게 선길은 같은 인격체가 아니라 누구든 선길 같은 신세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인부 관리 수단에 불과한 듯하다.
선길은 수모를 이겨내고 현장에 돌아와 일취월장한다. 인부들이 몰래 술을 마실 때도 일에 집중한다. 현장 반장 자리에 오르게 될 것이란 소식을 전해들은 그는 “정말 (반장) 되면, 잘해 보고 싶기는 해요”라며 희망에 차 있다. 그날 선길은 안전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안전 설비 공사도 생략한 채 일을 몰아붙인 소장 등 관리자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그러나 소장과 반장들, 인부들의 입맞춤으로 성실함과 원칙 준수의 표본이던 선길은 술을 먹다가 사고를 당한 몹쓸 사람이 된다. “산 사람은 살고 봐야지”라는 말은 죽은 이에 대한 온갖 명예훼손을 정당화한다.
다만 작가가 희망의 끈을 완전히 놓는 건 아니다. 마지막까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평범한 영웅의 존재는 아직은 버텨볼 만하다는 희망을 미약하게나마 살려놓는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