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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일 前 대법관 ‘화천대유’ 고문직 수행, 변호사법 위반 논란

입력 | 2021-09-25 12:11:00

법조계 “로스쿨 석좌교수가 무슨 자문했나” 의혹 눈초리



권순일 전 대법관. [동아DB]


권순일 전 대법관은 지난해 7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무죄 취지로 파기환송) 당시 다수의견에 섰다. 그가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고문을 지낸 사실이 최근 알려지면서 변호사법 위반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권 전 대법관은 판사로 오래 봉직했고 대법관까지 지낸 법조인이니 변호사 자격을 가진 것이 확실하다. 그럼에도 변호사법 위반 논란이 불거진 것은 그가 변호사 등록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변호사법은 변호사로서 활동하려면 개업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의 지방변호사회를 거쳐 등록신청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인포그래픽 참조). 변호사법(제15조)은 “변호사가 개업하거나 법률사무소를 이전한 경우에는 지체 없이 소속 지방변호사회와 대한변호사협회에 신고해야 한다”고도 규정한다.

“변호사 개업하려면 변협에 지체 없이 신고해야”

대한변호사협회 홈페이지 ‘변호사검색’란에 ‘권순일’을 입력하면 “검색어 권순일에 대한 검색 결과로 총 0건이 검색되었습니다”라는 결과가 나온다(9월 23일 기준). [대한변호사협회 홈페이지 캡처]


권 전 대법관이 지난해 9월 대법관직에서 물러나고 1년이 흘렀다. 대한변협 홈페이지 ‘변호사검색’란에 ‘권순일’을 입력하면 “검색어 권순일에 대한 검색 결과로 총 0건이 검색되었습니다”라는 결과가 나온다(9월 23일 기준). 동명이인이라도 있으면 좀 더 찾아볼 테데, 결과 값이 ‘0’이니 권 전 대법관은 대한변협 지회에 변호사 등록신청을 하지 않은 것이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9월 23일 주간동아와 전화 통화에서 “권 전 대법관은 현재 변호사로 등록하지 않은 상태”라고 밝혔다.

법조인인 권 전 대법관이 화천대유에 자문했다면 법률과 관련된 사안일 공산이 크다. 변호사법(제112조 4호 등)은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을 하지 아니하고 변호사의 직무를 수행한 변호사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그래서인지 권 전 대법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전화 자문 정도만 했고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았다” “화천대유가 어디 투자했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대장동 사업과 관련해 자문한 적은 없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권 전 대법관은 부동산 개발 분야 전문가는 아니다. 화천대유 고문을 지낸 또 다른 인물인 박영수 전 특별검사, 강찬우 전 수원지검장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이들은 월 1500만 원(권순일·박영수)에서 수백만 원(강찬우)을 고문료로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들이 고문으로서 한 역할이 무엇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화천대유는 법조기자 출신인 김모 씨가 자본금 5000만 원을 들여 설립한 법인이다. 다만 실제 대표는 이성문 변호사가 맡고 있다. 이성문 대표는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권 전 대법관, 박 전 특별검사, 강 전 지검장의 고문 영입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법조기자로 오래 활동한 (화천대유의) 대주주 김씨와 인연 때문이다. 김씨가 법조기자로 출입할 때부터 이들과 인연이 있었다. (중략) 이들이 부동산 전문가는 아니지만 ‘성남의뜰’과 관련한 실질적인 법률 자문을 많이 해줬다. 특히 권 전 대법관은 대장지구 북측 송전탑 지하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목 있는 대법관 출신을 영입하기로 하면서 모시게 된 것이다. 내가 권 전 대법관의 서초동 사무실에도 4번 정도 갔다.”

사건 관계자 각자도생 속 비밀 드러날까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을 시작할 때 화천대유는 성남도시개발공사 측과 해당 지역 송전탑을 지중화(地中化)하기로 했다. 그런데 개발 과정에서 화천대유는 이재명 당시 시장이 이끌던 성남시, 성남도시개발공사 측과 갈등을 빚었다. 화천대유가 송전탑 지중화를 중단하자 성남시가 과태료를 부과하면서 양측이 소송을 벌이게 됐다. 이 대표는 해당 소송에 대비하고자 권 전 대법관을 고문으로 모셨다고 밝힌 것이다. 권 전 대법관은 9월 17일 화천대유 고문직 사퇴를 밝혔고, 이 대표는 추석 연휴가 끝나고 9월 23일쯤 사표를 수리할 예정이라고 했다.

다만 화천대유 고문직 사퇴만으로 권 전 대법관의 변호사법 위반 논란은 해결되지 않는다. 권 전 대법관은 지난해 12월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가 됐다. 변호사 자격을 가진 이는 법과대학이나 법학전문대학원 교원을 할 수 있지만 변호사 개업 및 활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 변호사법은 물론이고 교육공무원법, 사립학교법 등이 원칙적으로 겸직을 금지하기 때문이다. 의과대학 교수 정도가 임상교육을 위해 예외적으로 병원에서 일할 수 있다. 의대·의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개인병원을 차려 운영할 수 없다. 연세대 석좌교수인 권 전 대법관은 변호사 등록은 물론이고 변호사 활동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석좌교수로 임용되고도 화천대유 고문으로서 법률 자문에 응했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권 전 대법관을 둘러싼 논란을 두고 법조계에선 말이 많다. 그의 행보에 대해 어느 변호사는 “권 전 대법관은 화천대유가 어디에 투자하는 회사인지도 몰랐다고 하니, 투자나 경영에 자문하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고 비꼬기도 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모든 법조인을 검색할 수 ‘한국법조인대관’에 따르면 권 전 대법관은 변호사가 아니라 연세대 법전원(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다. 권 교수가 화천대유에서 수행한 고문 업무는 무엇일까”라고 지적했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화천대유 사건은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 사건 관계자들은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는데, 그 과정에서 화천대유 논란의 비밀이 드러날 수도 있다.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07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