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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의 도발]아수라 백작과 화천대유

입력 | 2021-09-26 12:00:00


김성수 감독의 ‘아수라’를 왓차에서 뒤늦게 찾아봤다. 성남시 대장동 개발 의혹을 놓고 꼭 ‘아수라’를 보는 기분이라던 홍준표 국민의힘 대선 주자 말대로, 영화는 “요즘 재개발 열풍에 한몫 챙기려 서로 물고 뜯고 아주 난리가 났다”는 정우성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무대는 분당 부근 가공의 소도시 안남이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던 안남시장이 항소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고 설치는 장면부터 어디서 본 듯하다. 영어 제목인 ‘Asura: The City of Madness’도 madness를 우리말로 하면 분노, ‘성나다’의 명사형 ‘성남’ 아닌가.

영화 ‘아수라’의 한 장면(왼쪽). 오른쪽 사진은 25일 민주당 순회 경선 광주전남 합동연설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이재명 민주당 예비후보(현 경기도지사). 아수라 예고편 영상 캡처. 광주=뉴시스



● 만일 실제와 같더라도 이는 우연일 뿐

물론 감독은 2016년 영화에서 모든 게 모두 허구라고 밝혔다. 그러나 영화 속 안남 시장이 ‘천당 위에 분당, 분당 위에 안남’이라며 재개발을 역설하는 장면은 낯설지 않다.
뉴타운 설명회장에서 안남을 부자동네로 만들겠다면서 시장은 청중에게 묻는다. “무슨 동네요?” “부자동네!” 청중이 소리치자 안남시장은 대선 후보처럼 외친다. “저 박성배가 이 손으로 꼭 한번 만들어보겠습니다!”

당장 이 영화를 패러디한다면 “화천대유?” 물으면 “천화동인!” 답할 것이다. 아수라를 사랑하여 김성수를 영화의 신으로, 정우성을 연기의 신으로 모시는 아수리언들로부터 칼 맞을 소리겠지만.

● “제가 다 엮을 게요” 검사가 충성 맹세
권력과 금력, 폭력이 난무하는 영화답게 아수라에는 조폭과 검경이 다수 등장한다. 안남시장은 조폭 두목을 재개발위원회에 꽂아선 테러를 사주하고, 시장에 반대하는 재개발위는 경기지방검찰청 특수부장과 결탁한 상태다.

그래도 결국은 주인공 형사 정우성이 정의의 검사와 손잡고 안남시장을 잡아넣을 줄 알았다. 그러나 육덕(肉德) 있는 검사는 막판에 칼을 맞자 덩치값 못하고 악덕시장에게 충성맹세를 해버린다. “앰뷸런스 불러주면 제가 다 엮을 게요...”


대장동 개발사업 자산관리회사인 화천대유의 사무실 간판. 사진은 화천대유와 관계사인 천화동인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남욱 변호사, 박영수 전 국정농단 사건 특별검사, 강찬우 전 수원지검장. 동아일보DB

‘판 짜는 독종검사’라고 영화 포스터에 나와 있거늘 대한민국 검사가 어찌 이럴 수 있나. 나는 잠시 경악했다. 실제로 2015년 대장동 개발 로비 의혹 수사 당시 피고인(변호사 남욱)과 그의 변호인(박영수 전 특검), 수사 책임자인 관할 지방검찰청장(강찬우 수원지검장)이 대장동 개발사업의 자산관리회사인 ‘화천대유’와 그 관계사인 ‘천화동인’에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실은 상상을 능가하는 것이다.
● 그게 이재명과 무슨 상관이냐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 라고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일 거다. 그렇다면 작년 7월 이재명이 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무죄 받는 데 기여했던 권순일 당시 대법관이 어째서 화천대유에서 수억 원의 고문료를 받게 됐는지 합리적 설명을 대줘야 한다. ‘뉴스공장’ 공장장 김어준 식으로 표현하면, 냄새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김어준은 방송을 통해 신박한 프레임 전환을 퍼뜨리고 있다. 민간이 통째로 먹을 뻔한 대장동 개발 이익을 우리의 이재명이 공공으로 가져와 5500억 원을 회수했다는 논리다.

성남시장 이재명이 대장동 개발을 성남시 주도로 바꾼 건 맞다. 성남시 100%출자 공기업인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지분의 절반을 갖는 민간합작회사 성남의뜰(주)은 시행을 맡았다. 당연히 사업은 대박이 났다. 반값에 ‘땅작업’을 마칠 수 있어서다. 민간의 탈을 쓴 공공개발! 이런 초절정 노다지를 설계한 사람이 이재명의 핵심 측근 유동규 당시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었다.

성남의 뜰 대장지구 사업수익구조.


● 대장동 프로젝트는 LH사태의 확장판

우리가 LH사태에 분노했던 건 공공개발 관련 공적 정보를 LH 일부 직원이 빼돌려 땅을 사서 사적 이익을 챙겼다는 데 있다. 대장동 개발은, 일부 공적 정보를 공기업 몇몇 직원이 빼돌리는 정도가 아니라, 공적 정보를 통째로 이용할 목적으로 아예 공기업을 낀 민간기업을 만들어선 쌈 싸 먹은 것과 다름없다.

그 성남의뜰 주인이 누구냐. 실소유주는 (주)화천대유라는 자산관리회사다. 대주주 김만배 전 경제지 부국장은 회사 차리기 얼마 전 이재명을 인터뷰한 바 있다. 화천대유의 관계사로 천화동인 1호부터 7호까지 7명이 SK증권을 통해 투자했는데 이들이 3년 간 챙겨간 배당금이 무려 3460억원이다(화천대유는 577억 원).

나는 이재명이 스스로 밝힌 대로 대장동과 관련해 1원도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성남시라는 관(官)이 성남시민들의 땅을 헐값에 사들여 특정 사기업이 수천억을 벌게끔 판을 만들어준 것이었다. 머리 잘 돌아가고 판단력 빠른 이재명이 이런 판을 몰랐다는 건 LH사장이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보다 더 웃긴다.

LH 당시 사장이었던 변창흠 건설교통부 장관은 감독 부실의 책임을 지고 장관직에서 쫓겨났다. 대선주자 여권 1위인 이재명은? 몰랐다면 천하무능이고, 알았다면... 그 책임은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다.

● 대선까지 무한 이기주의로 무한도전

영화 ‘아수라’의 한 장면(왼쪽)과 올해 7월 대선 출마 선언 직후 국립현충원을 참배한 뒤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이재명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 영화 홍보스틸컷 캡처, 동아일보DB


“원래 인간은 남 입장에서 생각해지지 않는 거야. 다 지만(저만) 생각하는 거라고. 우리 도경이(정우성)만 빼고.” 아수라에서 안남시장은 말했다. 무한이기주의 법칙이다.

이번 대선이 아수라판으로, 대선 후보가 두 얼굴의 아수라 백작으로 등장하는 꼴을 보지 않으려면, 철저하고도 신속한 수사로 국민의 합리적 의구심을 탈탈 털어주는 수밖에 없다. 신뢰를 잃은 ‘김오수 검찰’이 어떤 수사결과를 내놓든 국민이 믿어줄 지는 잘 모르겠지만.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