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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티스트 꿈꾸다 출가… 40년 걸쳐 ‘엄마스님’과 佛緣을 잇다

입력 | 2021-09-27 03:00:00

서울 관악구 정혜사 주지 성보스님과 기원스님 ‘모녀 이상의 사제지간’
1982년 ‘엄마스님’과 ‘업둥이’ 인연… “사찰명 따라 이름과 법명이 됐죠”
삭발전날 ‘엄마스님’ 위한 한밤연주
“머리 깎지말고 나가살라했는데…” “삭발순간 묵은때 벗긴것처럼 편안”
성보스님, 아이들 악기교육에 열정… 기원 “받은만큼 베풀라는 말씀 실천”



23일 서울 정혜사에서 만난 성보 스님(왼쪽)과 기원 스님. 어려운 이웃을 돕는 여성 성직자 모임 ‘삼소회’ 활동에도 적극적인 성보 스님은 “음악과 이웃을 돕는 따뜻한 마음으로 코로나19를 극복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서울 관악구 정혜사 주지 성보 스님(64)과 기원 스님(39)은 스승과 제자이자 모녀(母女) 이상의 인연을 40년 가까이 이어왔다. 기원 스님이 스승을 부르는 호칭은 주지 스님이지만 급할 때는 “엄마”다.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가슴으로 키워준 ‘엄마 스님’이다. 23일 정혜사에서 이들을 만났다.


○ 삭발하는 날


2006년 겨울 기원 스님은 출가를 결심하고 삭발했다. 경원대에서 플루트를 전공한 그의 졸업 연주회 다음 날이었다. 그날 기억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평소 ‘너는 머리 깎지 마라. 밖에 나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살라’고 했죠.”(성보 스님)

“저는 한번도 절을 떠난다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기원 스님)

“삭발식 하는 날 제가 더 울었어요. 얘는 너무 담담한 거 있죠.”(성보 스님)

“삭발하는 순간, 몸의 묵은 때를 벗겨내는 것처럼 편안했어요.”(기원 스님)

삭발 전날 밤 절에서는 플루트 소리가 흘러나왔다. 승복을 입은 성보 스님이 졸업 연주회에서는 연주에 방해가 될까 봐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공연을 지켜본 까닭이다. 드레스 차림의 기원 스님은 엄마 스님만을 위한 한밤의 연주회를 펼쳤다. 2007년 중앙대 예술대학원 작곡과에 진학한 기원 스님은 “출가자가 전업 연주자로 활동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며 “작곡이 명상음악과 찬불가, 동요 등 여러 분야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 엄마 스님


이들의 인연은 1982년으로 거슬러간다. 성보 스님은 서울 노원구 기원사에서 총무 소임을 맡고 있었다. 사찰에 맡겨지는 ‘업둥이’들이 드물지 않던 시절이었다. 갓 100일이 지나 들어온 한 아이가 유난히 병치레가 많았다.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성보 스님을 엄마라고 부르게 했다.

“나중에 아이의 호적을 만드는데 사찰명을 따서 이름과 법명이 기원이 됐죠.”(성보 스님)

“어려서나 사춘기 때나 저는 힘든 게 없었어요. 스님이 저를 워낙 잘 키우신 거죠. 절에 친구들을 데려와 엄마라고 소개하기도 했어요.”(기원 스님)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로 활동 중인 김형주 씨(24)도 정혜사에서 성장했다. 국제 콩쿠르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뒤 현재 독일 베를린국립음대에서 유학 중이다.

“형주 일은 기원 스님이 다 알아서 했죠. 이 스님이 우겨서 해외 콩쿠르 출전시키고 모든 일을 했어요.”(성보 스님)

“제가 중학교 때 형주를 만났어요. 스님이 저를 그렇게 키워서 그런지, 아이들 공부에는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어요.”(기원 스님)


○ 무서운 돈


성보 스님은 인연이 닿은 아이들이 클래식 악기를 배우도록 도왔다. 자신이 음악을 좋아한 데다 절집 밖에서 공부하고 사회로 나아가야 할 아이들을 위한 배려였다.

“아이들이 외롭게 커서 악기나 노래가 부모 이상으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어요.”(성보 스님)

“방과후 수업으로 여러 악기를 했는데 다른 것은 중간에 포기했는데 플루트는 끝까지 한 거예요. 형주도 저를 따라 플루트를 배웠는데 안 맞았어요. 그러다 콘트라베이스 소리를 듣더니 ‘슬픈 소리다. 마음이 찡하다’고 했어요. 그게 전공이 됐죠.”(기원 스님)

이들은 음악이 아이들의 재능을 키우고 지역의 문화적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에는 플루트 첼로 바이올린 등을 가르치는 주말 어린이법회를 열고, 1년에 4차례 템플콘서트를 개최했다.

“절집 시줏돈 갖고 불사(佛事)나 하지 이상한 악기 가르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죠. 하지만 제가 도(道) 통하려고 선방 들어가 앉아 있는 것도 아니니,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는 게 더 중요하죠.”(성보 스님)

“‘너희들은 내 돈이 아니라 시줏돈을 갚아야 한다. 가장 무서운 돈이니 그만큼 베풀라’는 스님 말씀을 실천해야죠.”(기원 스님)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