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페미니즘 모태 ‘제2의 성’ 佛원전 첫 정식 출간 이정순 박사 “먼저 해제보고 읽는게 좋은 시작”
시몬 드 보부아르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에 빠졌던 대학 시절 보부아르를 만났어요. 인간으로서의 자신뿐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제 존재를 더 정확히 들여다볼 수 있었죠.”
프랑스 파리4대학에서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의 철학 사상과 문학 작품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이정순 전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대표(65)가 현대 페미니즘 사상의 모태가 된 보부아르의 ‘제2의 성’(1949년·사진)을 10일 을유문화사에서 번역 출간했다. ‘제2의 성’은 국내에 여러 판본이 유통되고 있었지만 프랑스 원전을 정식 계약해 번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책 번역과 주석, 해설에 3년간 공을 들였다는 이 전 대표를 최근 전화로 인터뷰했다.
“1980년 4월 파리에서 열린 장 폴 사르트르(1905∼1980)의 장례식에서 보부아르를 처음 봤어요. 박사 학위를 준비하던 1986년 3월에 정식으로 약속을 잡고 그를 두 번째로 만났죠. 당시 그의 미소와 그가 쓰고 있던 터번까지도 기억이 생생하답니다.”
‘제2의 성’은 실존주의 철학의 관점에서 원시사회부터 현대까지 여성의 상황을 예리하게 분석한 보부아르의 대표작. ‘우리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되는 것이다’라는 명제로 유명하다. 보부아르는 이 책에서 사회, 정치, 신화, 문학 등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는 남성의 여성 지배 및 남성이 여성에게 부여한 역할과 이미지를 총체적으로 분석했다.
책은 보부아르에게 세계적 명성을 가져다주었지만 당시 가부장 사회에서 “남녀는 평등하다”는 주장은 강력한 반발을 불렀다. 이 전 대표는 “대중은 물론이고 지식인, 심지어 일부 여성들에게도 ‘말도 안 되는 책’이라는 비난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그 시절의 양상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며 “민주주의의 세례를 받고 자란 오늘날의 젊은 여성들은 성평등 인식이 깊은 데 반해 남성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힘은 여전히 공고해 성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1000쪽에 이르는 이 책을 단숨에 읽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 전 대표는 “2부에서 다루는 생애주기에 따른 여성의 체험들은 현대 여성의 상황과도 겹쳐져 쉽게 읽힐 거다. 해제를 먼저 읽은 뒤 책을 읽는 것도 좋은 시작”이라는 팁을 건넸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