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연방의회 분데스타크(Bundestag) 총선에서 중도 좌파 사회민주당(SPD)이 초박빙으로 승리하면서, 16년간 독일과 유럽연합(EU)을 이끌었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권력을 넘겨주게 됐다.
26일(현지시간) 치러진 독일 총선거 결과 사민당이 25.9%를 득표하면서 차기 정부 주도권을 잡게 됐다. 메르켈 총리의 기독민주(CDU)·기독사회(CSU)당연합은 24.1%로, 역대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스스로 총리직에서 내려온 메르켈 총리는 2005년부터 16년간 총리로 재직하면서 독일뿐만 아니라 EU, 나아가 세계를 이끄는 지도력을 보여줬다.
2005년 총선에서 기민련이 35.2%로 승리하면서 독일 역사상 첫 여성 총리에 올랐으며, 네 번의 총선을 모두 승리를 이끌면서 정치 멘토 헬무트 콜과 함께 최장수 총리로 기록됐다.
메르켈 총리는 ‘무티’(독일어로 ‘엄마’)라는 애칭으로 종종 불렸으며, 부드러운 리더십과 함께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메르켈 총리를 세계 정치 지도자로 묘사하기도 했다.
특히 2009년 유로존 부채 위기 속에서 그리스, 스페인에 긴축정책을 밀어붙이는 등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유로존을 정상 궤도로 돌려놨다. 이 때문에 그리스 등 남유럽 국민은 메르켈 총리를 고집불통이란 의미의 ‘프라우 나인’(독일어로 ‘아니요 부인’)으로 부르기도 한다.
2015년 유럽 난민유입 사태 때는 전 유럽 차원의 대응을 이끌면서 국경 개방 정책을 취했다. 다만 난민 친화적 태도는 유럽 내 극우세력 부상을 낳기도 했다.
메르켈 총리의 다음 행보는 정해지지 않았다. 올해 67세인 메르켈 총리는 퇴임 후 정치인으로 남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달 초엔 저술, 연설, 등산, 집에서 휴식, 여행 등을 거론하며 퇴임 후 생활을 그리기도 했다.
다만 차기 정부가 꾸려지고 새 총리가 선출될 때까지 총리직을 맡으며 공백을 채울 방침이다. 연정 협상이 오는 12월17일을 넘길 경우, 메르켈 총리는 헬무트 콜을 넘어 독일 역대 최장수 총리로 남게 된다.
현재로선 차기 총리로 부총리 겸 재무장관 올라프 숄츠 사민당 대표가 유력하지만, 누가 됐든 메르켈 총리의 빈자리를 채우긴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적이다.
두 거대 정당인 사민당과 기민련이 어떤 연정을 꾸리더라도 3당 연정이 불가피해 보이는 만큼, 약화된 리더십과 줄어든 의회 지지로 이전만큼 추진력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코로나19 사태, 기후 변화, 중국 견제 등 과제도 산적해 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