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 ‘중국 애국주의와 고대사 만들기’ 집중 분석
하나라 유적 ‘100년의 공백’ 생기자 20년만에 재발굴 ‘연결고리’ 채우고
토기무늬-빈공수 명문 해석만으로 中민족 시조-하나라 창건까지 주장
“중국의 선택, 한국 미래와 밀접관련… 中 고대사 만들기에 관심 가져야”
1999년 20년 만에 재발굴이 이뤄진 중국 허난(河南)성 신자이(新砦) 주거지 유적에서 심복관(深腹罐·몸통의 지름보다 속이 더 깊은 토기)과 세발솥 등이 출토됐다. 1979년 1차 발굴 때는 이 유적이 하나라 왕성(王城)으로 추정되는 얼리터우(二里頭) 유적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정도만 확인됐다. 재발굴을 주도한 주체는 전설상의 왕조로 여겨진 중국 하·상나라 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하상주단대공정’ 연구팀. 하나라가 기원전 2070년∼기원전 1600년까지 470년간 지속됐다는 중국 전국시대 역사서 죽서기년(竹書紀年)에 따르자니 하나라 전기 왕성으로 보는 왕청강(王城崗)과 후기 왕성 얼리터우 유적 사이에 약 100년의 공백이 생겼다. 베이징대와 정저우(鄭州)시문물연구소로 구성된 연구팀은 이를 메우기 위해 신자이 유적을 다시 팠다. 결국 이들은 신자이 유적 출토품이 기원전 19세기∼기원전 18세기 중반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최근 발간한 ‘중국 애국주의와 고대사 만들기’에서 고고 자료 등을 통해 신화 속 고대국가를 실제 역사로 만들려는 중국 정부와 학계의 움직임을 분석했다. 공동 필진 중 한 명인 이유표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2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하나라 유적임을 증명하는 동시대 문헌이 나오지 않은 상태라 고고자료를 짜 맞췄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학계가 하나라를 창건한 우(禹) 기록으로 간주하는 빈공수(빈公k·장인 빈공이 만든 곡식을 담는 청동기) 명문도 견강부회라는 의견이 제기된다. 우선 유물의 조성 연대가 하나라 창건 시기에서 약 1000년이나 지난 뒤인 서주(西周) 대로 나타났다. 게다가 명문에는 ‘하늘이 우에게 명하여 땅을 다스리게 하시고 산을 따라 내를 준설하게 하셨네’라는 구절만 쓰여 있을 뿐 우가 하나라를 세웠다는 내용은 없다. 김인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패권적 애국주의는 자국 우월주의를 불러온다”며 “중국의 선택은 한국의 미래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중국의 고대사 만들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